한라공조 비상…'큰 손님' 현대차 이탈
현대자동차그룹이 한라공조에서 주로 납품받던 차량용 공조부품(에어컨·히터 등)의 거래처 다변화에 나섰다. 이에 따라 전체 매출의 60%가량을 현대차그룹(현대·기아차, 현대모비스)에 의존해온 한라공조에 비상에 걸렸다.

현대차는 세계적인 부품업체인 일본 덴소와 국내 2위 업체 두원공조 등에서 공급받는 물량을 지속적으로 늘려갈 계획이어서 한라공조의 매출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라공조는 미국 포드자동차와 한라그룹 계열 만도기계(현 만도)의 합작(50 대 50)으로 1986년 3월 만들어진 회사다. 1997년 12월 외환위기로 부도를 맞은 한라가 지분을 매각, 1999년 3월 미국 비스티온(지분율 70%)으로 대주주가 바뀌었다.

○미국산 쏘나타 부품 덴소가 납품

2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공장은 내년부터 생산할 신형 쏘나타(LF)에 들어가는 공조시스템 거래처를 한라공조에서 덴소로 바꿨다. 연간 생산능력 30만대인 앨라배마공장은 쏘나타와 아반떼를 각각 62%, 38%가량 만든다. 덴소는 일본 도요타자동차에서 분리돼 1949년 설립된 세계 2위의 자동차 부품업체다. 덴소는 만도 및 프랑스 발레오와 합작으로 자동차 공조부품 생산회사를 설립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중국 공장 거래처도 한라공조에서 점차 두원공조로 돌릴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 중국 1·2·3공장은 연간 100만대를 생산한다. 기아차도 기존 1·2공장(연산 43만대) 외에 2014년 3공장(30만대)을 준공한다. 두원공조는 한라공조(54%)에 이어 국내 공조부품 시장 점유율 25%를 차지하는 2위 업체다.

○품질 경쟁 유도하는 현대차

현대차그룹이 공조부품 거래처 변경에 나선 것은 신차 개발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업무협의 과정에서 한라공조와의 협의가 잘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관계자는 “최대주주가 외국계여서 그런지 미국과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차종과 관련한 협의가 원활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국내 시장에서 한라공조의 독주 체제를 깨 업체 간 경쟁을 통한 품질 향상을 원하는 현대차의 의지도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친환경·에너지절감형 차량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완성차 메이커와 공조부품 업체와의 유기적인 협력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부품업체 관계자는 “완성차와 부품업체 사이에 사소한 갈등은 있어왔지만 거래처를 전격적으로 변경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며 “신차 개발을 둘러싼 잦은 마찰로 두 회사 간 신뢰관계에 금이 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라공조 매출 타격 불가피

한라공조의 현대차그룹에 대한 매출 의존도는 60%에 이른다. 현대차그룹이 거래처를 바꾸면 한라공조의 매출 타격이 불가피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라공조는 작년 3분기(1~9월)까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서 1조609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기간 한라공조 전체 매출(2조6856억원)의 59.9%를 차지한다. 전년 같은 기간의 62.0%보다 2.1%포인트 낮아졌다. 4분기에는 이 비중이 더 줄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라공조는 2010년 매출 3조3121억원에 영업이익 3045억원을 올렸다. 국내 공조부품업체는 현대·기아차에 공급하는 한라공조와 두원공조, 한국GM에 납품하는 한국델파이, 르노삼성과 쌍용차에 공급하는 기타 회사들로 나눠진다.

한라공조는 최근 비스티온 계열의 공조 관련 부품회사 인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비스티온은 세계 자동차부품시장 22위(2011년 매출 기준)다.

이상현 NH농협증권 연구위원은 “비스티온이 공조 분야 계열사를 한라공조 한 곳으로 합치는 것은 최대 납품처인 현대차를 견제하고 향후 매각 작업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의도”라며 “하지만 한라공조를 제외한 나머지 공조계열사들의 가치가 높지 않은 데다 현대차 매출의존도가 워낙 높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