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것은 모래 지형에서 꾸준히 액셀(가속페달)을 밟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북부 모로코의 서쪽 도시 에사우리아의 사막 초입. 가이드가 기자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모래에서 차가 달릴 때 특히 오르막에서는 차가 멈추면 안 됩니다. 차가 서면 모래에 휠이 파묻히면서 고립되기 십상이죠.” 꾸준히 가속페달을 밟아줘야 토크(회전력)를 유지하면서 차가 모래를 박차고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10일 영국의 럭셔리 오프로더 올 뉴 레인지로버 4세대 모델의 시승 행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모래 위를 달리는 기분은 예상외로 부드러웠다. 노면 마찰음이 없어 조용했다. 가파른 언덕을 오를 때도 망설임 없이 나갔다.

사막 지형을 벗어나자 노면에 돌이 많아졌다. 거친 산악 지형이 시작된 것. 지면 위에서 돌과 모래가 수시로 바뀌는 지형이어서 ‘테래인 레스폰스’를 ‘사막’에서 ‘오토’로 맞춰놨다. 이번 4세대 모델에 탑재한 ‘테래인 레스폰스 2’는 각 지형에 맞게 차량의 상태가 세팅되는 시스템이다. 일반도로와 산악, 사막, 눈길 등에 따라 서스펜션 세팅과 토크 배분 등을 다르게 해준다. 기존 테래인 레스폰스 1에서 2로 바뀌면서 달라진 점은 ‘오토(auto)’로 설정해 놨을 때 차가 자동으로 노면의 상태를 파악하고 그에 맞게 세팅을 바꾼다는 것이다.

산악 지형을 달릴 때 차가 흔들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차체가 충격을 최소화했고 랜드로버 특유의 ‘에어 서스펜션’ 덕분에 부드러운 승차감을 느끼며 주행할 수 있었다.

올 뉴 레인지로버는 이전 모델보다 휠베이스(앞뒤바퀴축 간 거리)는 길어지고 높이는 낮아졌다. 내부 공간은 더 여유로워졌다. 차체 무게도 3세대 레인지로버는 2580㎏이었는데 4세대 모델은 420㎏을 감량해 2160㎏으로 줄었다. 차체를 알루미늄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외관은 전체적으로 기존 강한 직선이 한결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각진 디자인은 유지했지만 모서리 부분을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했다. 이번 글로벌 미디어 시승 행사 기간 중 두 가지 차종으로 시승했다. 첫날은 3.0ℓ 6기통 디젤 엔진을 얹은 모델이었다. 최고출력 258마력, 최대토크는 60㎏·m였다. 연비는 37.7mpg. 100㎞를 달리는 데 7.5ℓ의 경유를 소비하니 13.3㎞/ℓ 정도다. 이튿날에는 510마력짜리 8기통 5.0ℓ 슈퍼차저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레인지로버를 탔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 시간이 5.4초에 불과한 고성능 모델이었다. 벤틀리에 견줘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정숙성과 승차감을 구현해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시속 150㎞로 달릴 때도 풍절음을 들을 수 없었다.

정숙성이 뛰어난 만큼 스피커 시스템도 완벽하게 세팅했다. 영국의 명품 메르디앙 스피커를 28개 달았다. 고음에서도 깨지지 않는 깔끔한 음질과 풍성한 음량이 일품이었다. 인테리어도 ‘명불허전’이었다. 밝고 어두운 색을 적절히 배합하고 우드와 스틸 재질이 조화를 이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최고급 소가죽으로 마무리한 시트도 편했다.

음악을 들으며 산악 지형을 지나자 강물이 앞을 막아섰다. 도하 순서가 다가온 것.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널 때도 사막과 같이 액셀에서 발을 떼면 안 된다. 꾸준히 밟아줘야 거친 강물과 자갈 바닥을 헤치고 나갈 수 있고 배기구를 통해 물이 차량 내부로 역류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레인지로버는 건널 수 있는 물의 깊이가 최대 900㎜에 달한다. 이전 모델보다 200㎜ 늘어났다. 시승에 앞서 2주 동안 비가 내려 강물이 꽤나 깊어 물살이 셌지만 레인지로버는 꿋꿋하게 강물을 헤쳐나갔다. 국내에서는 주로 도심에서 주행하고 있지만 오프로드 성능 또한 ‘사막의 롤스로이스’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 뉴 레인지로버는 내년 1월 국내에 출시될 예정이다.

마라케시·에사우리아=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