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회사에 다니는 김동훈 대리(33)는 최근 가까운 편의점에서 칠레산 와인 ‘몬테스클래식’을 1만5700원에 샀다. 김 대리는 “동료들과 함께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든 다음 뒤풀이용으로 구입했다”며 “예전에는 주로 맥주를 샀지만 요즘엔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도 저렴한 와인이 많아 즐겨 마신다”고 말했다. 주부 정소미 씨(42)는 대형마트에서 칠레산 ‘G7카베르네소비뇽’ 3병을 2만700원에 구입했다. 정씨는 “집에서 연말 친목회를 여는데 와인을 준비하면 밖에서 회식하는 것보다 비용도 적게 들고 분위기도 낼 수 있어 좋다”고 설명했다.

◆대형마트·편의점서 판매 급증

와인이 ‘특별한 날 마시는 술’에서 ‘평소에 마시는 술’로 인식이 바뀌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올해 불황 속에서 대부분의 주류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지만, 와인은 대형마트 백화점 편의점 등 대부분의 유통채널에서 두 자릿수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까지 와인 수입액은 1억1784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2.8% 늘어났다. 올해 연간으로는 작년보다 9.9% 증가한 1억450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사상 최대였던 2008년(1억6651만달러) 이후 가장 많은 수준이다. 2000년 초반부터 서서히 성장하던 와인 시장은 와인 열풍이 불었던 2007년 1억5036만달러를 기록한 후 2008년에 정점을 찍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09년엔 32.5%나 급감했으며, 2010년에도 답보상태를 보이다 작년에 17.0%의 회복세를 보였다.

다른 주류와 비교해보면 와인의 성장세는 더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마트에서 올해 1~10월 와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소주와 막걸리는 각각 1.2%, 6.2% 감소했다. 이마트에서 팔린 와인은 746억원어치로, 처음으로 소주(709억원)를 앞질렀다. 이 기간 롯데마트에서도 소주 판매는 6.3% 늘어나는 데 그치고 막걸리는 3.6% 줄어든 데 비해 와인은 19.8%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편의점 CU에서는 작년 동기 대비 40.5%나 성장했다. 이재선 CU 음용식품팀 상품기획자는 “집에서 조용히 와인을 즐기려는 싱글족이나 커플들이 주요 구매층”이라며 “편의점에서 사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와인이 대중화됐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CU나 세븐일레븐은 최근 1인용 미니와인도 자체상품으로 출시했다.

◆와인 원산지 다양화

업계에서는 내년에도 와인시장이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신근중 이마트 와인 바이어는 “2007~2008년 와인 붐이 일었을 때는 ‘지식이 필요한 마니아들의 술’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젊은층이나 주부들 사이에서 ‘대중적인 술’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며 “합리적인 가격의 G7, 1865, 빌라M, 몬테스알파 등 중저가 와인이 인기를 끄는 것도 그런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와 칠레산(産) 중심이었던 와인 원산지가 다양해지고 있는 것도 와인시장의 저변을 넓히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와인 수입사 금양인터내셔날의 유동기 브랜드전략팀장은 “최근 유럽연합(EU) 및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는 등의 영향으로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아르헨티나 등 새로운 산지의 와인이 뜨고 있다”며 “와인의 선택폭이 넓어지면서 시장 규모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19.4% 성장했던 칠레 와인은 올 들어 10월까지 4.4% 성장하는 데 그쳤지만 로버트 몬다비, 아포틱 등 미국 와인은 FTA 효과에 힘입어 36.2% 성장했다. 비슷한 품질에 비해 상대적으로 값이 싸다는 점을 앞세워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트라피체, 카이켄 등 아르헨티나 ‘말벡’ 품종의 와인은 50% 이상 급성장했다.

◆성장여력 많은 화이트와인

레드와인에 편중돼 있는 국내 와인시장이 화이트와인을 중심으로 더 성장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레드와인은 보통 육류와 곁들여 마시는 데 비해 다양한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는 화이트와인이 ‘웰빙’ 바람을 타고 본격적인 인기를 끌 것이란 점에서다.

국내시장에서 그동안 레드와인의 비중이 80% 정도를 차지했지만, 올해 들어선 70% 수준으로 떨어졌다. 조상덕 길진인터내셔날 이사는 “화이트와인이 보다 마시기 편하고 다양한 음식과 쉽게 매칭할 수 있기 때문에 와인의 대중화와 함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