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한불제당년용(好漢不提當年勇·무릇 사내된 자 과거 자랑을 하지 않는다)’.

올해 2월 재취업에 성공한 윤영호 씨(57)는 취업 비결로 이를 꼽는다. 삼성물산에서 15년간 해외 건설현장 관리직으로 일했던 윤씨는 2009년 퇴직 후 재취업에 나섰다. 그는 자신의 화려한 경력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나이 앞에서 이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다. 과거의 경력만을 믿고 이를 강하게 어필한 것은 과거 업무 스타일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변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란 느낌을 줄 뿐이었다. 그는 이 같은 문제점을 깨닫고 태도를 개선, 영어와 중국어 공부에 매달리는 등 자신의 실력을 쌓는 것에 주력했다. 그 결과 그는 올해 베트남 항만현장 관리직으로 재취업에 성공했다.

한국무역협회 중견고용지원센터가 10명의 중견·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실시한 ‘CEO가 말하는 중견인력 채용조건 5’ 설문조사에서도 재취업을 위해선 윤씨처럼 ‘과거와의 단절’이 절실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CEO들은 “화려한 경력을 가진 이들 중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보다는 과거 방식대로 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전 직장에서의 자신을 깨끗이 잊고 변화에 대한 개방적인 자세를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조직 융화력과 적응력도 중요하다. 중견·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근무환경이 열악하고 조직 문화가 잘 발달하지 못한 탓에 중견인력들이 재취업 후에도 이직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CEO들은 “이들을 어렵게 교육시켰는데 훌쩍 떠나버리는 것은 회사의 큰 손실”이라며 “조직 융화력이 뛰어나고 새로운 근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주의깊게 살펴본다”고 말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도 필수다. 대기업 퇴직자들은 중소기업에 입사하면 자기 분야에 깊이 있는 전문성은 있으나 기업 전체를 넓게 보는 눈이 부족하다는 것. 이들은 “대기업은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고 부서 간의 협조를 구하면 되지만 중소기업에선 생산과 영업 등 다양한 분야의 일을 하게 된다”며 “한 분야의 전문가인 점만을 어필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부문에서 경험과 지식을 쌓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CEO들은 성과를 내는 데 급급하기보다 배우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사람, 겸손한 태도를 가진 사람을 원한다고 말했다. 김영희 무역협회 중견고용지원센터장은 “CEO들의 이 같은 선호도와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을 잘 파악해 재취업을 준비해야 한다”며 “나이를 두려워말고 도전 정신을 갖는다면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