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아쉽네요. 공공기관 지정 해제를 요구할 명분이 될 수 있었는데….”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자통법)’ 개정안이 알맹이 없이 통과된 다음날인 지난 20일. 한국거래소의 한 간부는 연신 ‘아휴, 아휴’하며 안타까워했다.

대형 투자은행(IB) 설립 허용이 무산돼서가 아니다. 대체거래소(ATS) 도입이 기약없이 미뤄져서다. 거래소의 유가증권 유통기능을 대체하는 전자적 증권거래시스템인 ATS가 도입되면 한국거래소의 시장지배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거래소 직원들은 안도하기는커녕, 애석해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ATS가 도입되면 거래소의 시장지배력은 줄어들지만, ‘독점기업’이란 부담을 떨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공공기관 지정에서 풀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2009년 1월 말 정부가 거래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때의 이유가 ‘독점기업’이었기 때문이다. 거래소의 독점 상황은 거래소 임직원들이 지켜야 할 ‘철밥통’이 아니라, 거꾸로 끊어내야 할 굴레인 셈이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52년간 민간 영역에 있다가 공공기관이 된 지 이제 4년째다. 정부(금융위원회)의 감독을 받고 국정감사로 인해 업무가 마비되는 일에 익숙지 않다. 깐깐한 감사원 감사를 받느라 거래소 임원들은 “해외 출장도 맘놓고 가지 못한다”고 한탄하곤 한다. 해외 선진 거래소들이 합병을 통해 대형화하고 글로벌시장 진출을 가속하고 있는데, 한국거래소는 손발이 묶였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 3월, 거래소 이사장 공모에서 ‘낙하산 후보’가 탈락한 괘씸죄가 한국거래소의 공공기관 지정 배경이란 얘기가 아직도 공공연하게 나돈다. 억울할 만하다. 그러나 민간의 창의, 빠른 의사결정과 유연한 대응력이라는 DNA가 만 4년 만에 사라질 순 없다. 자본시장 인프라 발전을 위한 ATS 도입안을 놓고 거래소의 조직적 이해에만 주목하는 행태에서 오히려 이런 DNA가 도태되는 느낌이다.

국내 자본시장의 거래비용, 매매 체결속도, 매매제도 등은 선진 증시보다 낙후된 게 사실이다. “거래 수수료 절감, 새 수익모델 발굴 등의 장점이 많은 ATS 도입을 기대했는데 아쉽다”는 업계의 목소리에 좀더 귀 기울여야 할 때다.

장규호 증권부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