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북송(北宋·960~1126)의 명재상이었던 조보(趙普)는 시골 아전 출신이었다. 어릴 때는 건달로 지냈고, 철이 들어서는 전쟁터를 전전했기 때문에 ‘가방끈’이 좀 짧았다. 북송 태조를 도와 나라를 세우고 관직에 오른 뒤 열심히 읽은 책은 《논어》 밖에 없었다고 한다. 정적들은 “고작 논어 한 권 읽은 무식한 사람이 재상을 너무 오래한다”고 비아냥댔다.

그러나 조보는 태종에게 당당하게 말했다고 한다. “신(臣)이 읽은 책은 논어 한 권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그 반으로 태조께서 천하를 도모하는 데 도움을 드렸고, 나머지 반으로 폐하(태종)께서 태평성대를 여시는 데 기여했습니다.” 후대에 이 말이 와전돼 조보가 ‘반쪽의 논어로 천하를 다스렸다’는 ‘반부논어(半部論語)’란 고사성어가 생겼다.

'사업보국'은 필생의 과제

예로부터 동양에선 수신과 경영 등의 비법을 담은 고전으로 논어의 인기가 높다. 국내에선 최근 서거 25주기를 맞은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논어를 삶의 지침서로 삼았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다. 호암은 “나의 생각이나 생활이 논어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만족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경영학자들은 세계 초일류기업 삼성을 일으킨 원동력으로 ‘인재제일’ ‘합리추구’ ‘사업보국(事業報國·사업으로 나라에 보답한다)’등 호암의 3대 경영철학을 꼽고 있다. 이 중 ‘사업보국’은 호암 필생의 과제였다.

호암을 10년간 보필했으며 전경련 부회장과 서강대 총장을 지낸 손병두 삼성꿈장학재단 이사장은 “경영자에게는 적자를 내도 형법상 잡아가는 조항은 없지만, 그것은 국민에게 큰 죄를 짓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첫째는 건실한 운영으로 이익을 내서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그의 철학을 전한 적이 있다.

호암은 기업의 성장에 맞춰 사회기여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55세 때인 1965년 재산을 평가해 3분의 1을 종업원 복지에 내놨다. 이후 삼성공제회를 통해 국가가 못한 의료비 보조, 학비 보조 등의 복지증진 사업을 진행했다. 삼성장학회, 삼성문화재단 등을 통한 사회공헌 활동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기업가 정신에 인색한 사회

기업가 정신이 바탕인 호암의 ‘사업보국’은 그가 정신적 스승으로 삼았던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1840~1931)의 ‘논어와 주판’론과 맥을 같이한다.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시부사와는 그의 저서 《논어와 주판》에서 “경제활동과 윤리도덕은 모순되지 않는 ‘의리합일(義利合一)’이며, 기업가는 공공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를 위해 기업가는 왼손에는 ‘논어(義)’, 오른손에는 ‘주판(利)’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대한민국 근대사에 남긴 호암의 거대한 족적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는 현실은 씁쓸하기만 하다. 한국경제신문을 제외한 대다수 언론은 그의 철학과 삼성의 성과 등 본질보다는 재산분쟁과 갈라진 추모행사 등 곁가지 보도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연말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반(反)기업 정서에 편승해 경제민주화란 이름으로 ‘재벌해체’ ‘재벌 옥죄기’에 여념이 없다.

“삼성은 한국 기업사회에서 ‘메세나’의 모범”(도미닉 바흐조 소르본대 교수), “(삼성과 같은) 한국의 대기업 그룹은 기업가 정신이 발화하고 구현된 터전이었으며, 한국 경제의 핵심 성장엔진”(타룬 칸나 하버드대 교수)이란 외부 평가가 무색할 정도다. 경제가 어려운 요즘, 전쟁의 잿더미에서 조국 근대화를 이끌었던 ‘논어와 주판을 든’ 호암의 기업가 정신이 그리워진다.

김태철 지식사회부 차장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