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리조나주에 살던 주부 니콜 드레이퍼는 2006년 쌍둥이를 낳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쌍둥이 아들 닉과 네이트가 확장성 심근병증이란 희귀병을 가진 채 태어났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두 아들이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수소문해 찾은 곳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UCLA 메디컬센터. 불안에 떨던 드레이퍼에게 메디컬센터 직원들은 따뜻한 차 한 잔부터 건넸다. 의료진은 “살려보겠다”고 했다. 아이들의 상태와 치료 과정을 차분하게 설명해 드레이퍼를 안심시켰다. 심장 이식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두 아이는 완쾌해 퇴원했다.

드레이퍼는 “UCLA에서 받았던 것은 치료뿐만 아니라 감동이었다”고 말했다. “의료진의 실력도 좋았지만 더 놀란 건 병원 측의 세심한 배려였죠. 행여나 우리의 마음이 다칠까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써줬어요. 이곳에서의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로널드레이건 UCLA 메디컬센터를 포함해 4개 병원과 75개 외래 클리닉을 운영하는 UCLA헬스시스템(이하 UCLA)은 매년 8만명 이상의 입원 환자를 받는다. 외래 환자는 한 해 100만여명에 이른다. UCLA의 목표는 “이들 모두에게 최고의 경험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2009년 미국병원협의회(AAHP)는 UCLA를 ‘미국에서 가장 환자친화적인 병원’으로 선정했다.

○호텔을 벤치마킹한 병원

1955년 개원 때부터 UCLA의 환자 만족도가 높았던 것은 아니었다. 데이비드 파인버그 UCLA병원 최고경영자(CEO)는 “교육, 연구, 임상 부문은 최고였지만 환자 평가는 바닥이었다”고 2003년 UCLA 산하 병원에 부임했을 때를 회상했다.

당시 의사들은 진료에만 신경을 썼을 뿐 행정서비스(의료비, 식사, 입원 환경 등)엔 관심이 없었다. 진료만 좋다면 나머지는 부족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UCLA가 가진 의료 수준에 비해 평판이 좋지 않았던 이유였다.

파인버그 CEO는 서비스 부문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환자들은 자신이 의료진으로부터 존중받길 원했다. “직원과 환자 간의 감정적 연결고리가 생기면 가족과 친구들에게 병원을 추천하는 것은 물론 환자 자신도 단골로 남을 것이다.”

구체적인 행동지침이 필요했다. ‘환자에게 존칭 쓰기’ ‘실행할 치료에 대해 설명하기’ ‘걱정되는 점이 있는지 물어보기’ ‘다음 방문 시간을 알리기’ 등을 지침으로 정해 문서화했다.

환자가 원하는 것을 세심하게 파악하는 일은 기본이었다. 평범한 삶을 그리워하는 소녀 환자를 위해 졸업파티를 열었다. 산모에겐 예쁜 축하카드를 준비했다. 신생아들의 기분을 알아내기 위해 전문가도 투입했다. 미숙아들이 보내는 미세한 신호를 분석해 기저귀 교체 빈도를 조절하기 위해서였다.

음식을 제공하는 방식은 호텔 서비스를 참고했다. 룸서비스처럼 원하는 음식을 선택해 전화로 주문할 수 있도록 했다. 병실까지 직접 주전자를 들고 가서 커피를 따라주는 서비스도 도입했다. 식당엔 컵케이크 같은 예쁜 간식을 놓아뒀다.

2005년 입원·외래 모든 부문에서 30%대에 그쳤던 환자만족도는 지난해 95%까지 뛰었다. 다른 병원에 있다가 UCLA로 옮긴 환자 톰 하퍼스는 “망망대해에서 썩은 목재로 만들어진 뗏목을 타고 표류하다가 호화 여객선에 구조된 느낌”이라고 UCLA의 서비스를 표현했다.


○“직원들을 춤추게 하라”

서비스 수준을 높게 유지하기 위해선 직원들의 직무 만족도를 올려야 했다. 우울한 직원이 환자를 따뜻하게 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업무 강도가 높은 의사와 간호사들에겐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이 더 절실히 필요했다.

간호부문 책임자 캐시 로저드는 간호사들을 위해 3일짜리 재충전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간호사란 직업을 선택했던 동기를 회상하고, 힘든 점을 토로할 시간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환자에게 헌신적이었던 간호사에겐 매달 ‘병원의 영웅’이란 이름의 상으로 보상했다. 로저드는 “간호사들은 매일 아픈 사람들을 접하는 힘든 직업”이라며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로 지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2003년 미국 종합병원 중에선 처음으로 환자 이송을 위해 훈련된 전문 직원들을 투입했다. 간호사들의 부상률을 낮추기 위해서였다. 이전까진 간호사들이 직접 환자의 체위를 바꾸거나 자리를 옮기다 다치는 경우가 많았다. 전문 이송팀이 출범한 지 1년 만에 간호사 부상 횟수는 75%나 줄었다.

직원들의 불만이나 제안은 곧바로 경영진에 전달됐다. 병원 로비 중앙에 의견함을 배치했다. 파인버그 CEO는 매주 무작위로 선정한 직원들을 식사에 초대한다. 특이한 점은 직원들이 편한 시간에 CEO가 맞춘다는 것. 야근이 많은 직원들의 피로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다.

직원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판단되면 경영진은 즉각 지원에 나섰다. 병동 지원부의 빌 로스는 몇 년 전 “직원들이 환자에게 마사지를 해주면 어떨까”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병원은 이 제안을 암 환자 통증관리 시스템의 일부로 채택했다. 마사지 프로그램은 UCLA 산하 모든 병원으로 확대됐다. 로스는 “내 작은 아이디어를 경영진이 빛나게 해줬다”고 말했다.

○‘공유하는 혁신’

UCLA 환자들은 요청만 하면 애완견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일명 ‘강아지 회진’이다. 애완견을 데려온 환자들의 심박수가 낮아지고 호흡이 좋아졌던 것에서 착안했다. UCLA의 ‘인간과 동물의 유대(PAC)’ 프로그램 책임자인 잭 배런은 “UCLA는 보수적인 의료계에 도전하는 혁신적 병원”이라며 “새로운 치료방법들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PAC 프로그램은 다른 병원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돼 많은 동물 치료 프로그램 탄생에 기여했다. UCLA의 혁신적 치료방법들을 다른 병원과 공유한 덕분이다. 경쟁자들에게 자신의 영업비밀을 숨기는 일반 기업과는 노선이 다르다. 병원끼리 경험과 아이디어를 교환해야 의학이 발전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파인버그 CEO는 “의학 혁신의 공유로 전체 의료 수준이 올라가면 UCLA를 포함한 의료계 전체가 혜택을 볼 수 있다”며 “모두에게 좋은 윈윈(win-win) 전략”이라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