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들이 제시하는 복지공약을 이행하려면 재정이 파탄날 지경이라고 한다. 나갈 돈은 많은데 들어올 돈은 태부족이다. 얼마 전 강봉균 전 의원이 주도한 건전재정포럼에서 교육, 의료, 일자리 등을 망라한 복지공약을 분석한 결과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5년간 75조3000억원,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같은 기간 164조7000억원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그러나 재원방안을 보면 박 후보는 40조원, 문 후보는 122조5000억원이 빈다고 한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 공약도 다를 게 없다. 올해는 무상보육 소동이 벌어졌지만 내년에는 기초노령연금이나, 무상의료 아니면 아동수당에서 사고가 나도 놀랄 게 없다. 정치권에서 증세 얘기를 꺼내는 이유다.

징벌적 증세ㆍ보편적 증세 충돌

문제는 세금을 누가 내느냐다. 징벌적 증세론과 보편적 증세론이 충돌하는 대목이다. 징벌적 증세론은 문 후보가 대표적이다. 소득세와 법인세 최고세율을 높이겠다는 이른바 부자증세다. 그러나 세율을 올린다고 세수가 늘어나는 구조가 아니다. 국세청에 따르면 법인세의 경우 지난해 상위 10% 업체가 전체 세금의 97.3%를 냈다. 반면 전체 기업의 46.2%는 법인세를 한푼도 내지 않았다. 근로소득세도 비슷하다. 상위 10%가 전체 세금의 68.1%, 상위 20%가 84.4%를 부담하는 데 반해 전체 근로자의 39.1%는 소득이 면세점 이하다. 게다가 내년 이후 세수는 저성장으로 정부 예상보다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세수효과가 별로 없는 증세를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온통 씌우겠다고 하니 징벌적 과세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부가가치세 인상을 검토해보자는 주장은 그 대안적 성격을 갖는다. 한국 조세부담률이 19.3%(2010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하위권에 속해 현재 10%인 부가세를 올릴 여력이 있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조세연구원은 부가세가 통념과는 달리 소득 중립적이어서 역진성이 없으며, 그 증세분을 복지지출에 쓰면 소득재분배 효과가 생긴다는 실증 분석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사실 많은 선진국들이 보편적 증세로 복지비용을 충당한다. 스웨덴이 대표적이다. 이 나라의 부가세는 25%로 덴마크와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이다. 조세부담률도 34.3%로 한국의 두 배에 가깝다. 1950~80년대 복지를 즐기다가 경기침체에 빠져 세금이 나올 데가 없자 사회민주당이 집권하던 90년대 초반 대대적인 세제개편으로 부가세를 전격적으로 올렸다. 이후 법인세와 소득세를 낮추고 상속세와 부유세를 폐지해도 부가세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복지가 성장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에 따른 결과다. 일본 민주당 정부도 무리한 복지공약에 두 손을 들어 결국 올해 정권을 걸고 부가세 격인 소비세를 2015년까지 두 배(10%)로 올렸다.

위기에 증세로 역주행할 판

이제 와서 증세를 얘기하고 나선 정치권이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 많은 돈을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플랜을 제시하지 않고 무상복지 확대를 외쳐 재미를 좀 봤지만 이제 한계가 왔다는 판단일 것이다.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는 것을 공짜라고 불러왔던 터다. 증세를 거론하는 것은 복지를 늘리려면 이 길밖에 없다는 뒤늦은 고백이다. 경제위기 속에서 세금을 오히려 올리는 역주행이 벌어질 판이다. 국민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감당할 수 있는 복지와 증세 중 어느 쪽으로 갈 것이냐는 질문이다. 차라리 지금 문제가 제기되는 게 다행이다. 대선후보들은 증세문제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올 게 왔다.

문희수 논설위원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