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천자칼럼] 허리케인

버지니아로 가던 영국 범선 ‘시 벤처’호가 좌초한 건 1609년이었다. 승객과 승무원이 모두 실종된 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2년쯤 지난 후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죽은 줄 알았던 탑승자들이 카리브해 북부 버뮤다 섬에서 구조된 것이다. 이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셰익스피어는 난파기록을 뒤져 희곡 ‘템페스트’를 썼다.

당시 시 벤처호를 난파시켰던 템페스트가 바로 허리케인이다. 폭풍의 신, 강대한 바람 등을 뜻하는 에스파냐어 ‘우라칸(huracan)’에서 유래했다. 우리말로는 싹쓸바람이다. 북대서양, 카리브해, 멕시코만 등에서 주로 8~10월에 연 평균 10개 정도씩 발생한다. 허리케인은 위력이 강한 만큼 그동안 큰 피해를 남겼다. 1926년 발생한 ‘그레이트 마이애미’는 무려 1570억달러(약 172조원), 2005년 뉴올리언스를 물바다로 만든 카트리나는 1080억달러(약 117조원)의 피해를 각각 입혔다. 작년 아이린의 피해액도 150억달러(약 16조원)에 달했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 미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한때 ‘스톰퓨리(STORMFURY)’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요오드화은과 드라이아이스를 구름에 뿌려 폭풍의 강도를 약화시킨다는 계획이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어떤 과학자는 수소폭탄으로 허리케인을 폭파해 대륙 바깥으로 밀어내는 방안을 제시한다. 2009년에는 빌 게이츠가 깊은 바다 속에서 끌어올린 찬 물로 해수면 온도를 낮춰 허리케인의 에너지 공급을 차단하는 기술을 특허신청하기도 했다. 허리케인이 해수면 온도 27도 이상인 해역에서 가열된 공기가 수증기를 공급받아 발생한다는 데 착안한 아이디어다.

허리케인 ‘샌디’가 미 북동부를 휩쓸면서 많은 피해를 냈다. 바닷물과 강물이 곳곳에 범람한 것은 물론 뉴저지주에서 나무가 차량을 덮쳐 2명이 사망하는 등 인명피해도 속출했다. 동부지역 비행기 운항이 대거 취소됐고 주요 도시 지하철과 버스도 멈춰섰다. 뉴욕증시와 시카고상업거래소도 휴장했다. 겨우 회복 기미를 보이는 경기 흐름이 끊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샌디의 영향은 정치권까지 미치고 있다. 대선에서 박빙의 대결이 벌어지고 있는 만큼 오바마 대통령과 롬니 후보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판세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2005년 카트리나가 강타했을 때는 부시 대통령이 늑장대응하는 바람에 지지율이 뚝 떨어지며 레임덕이 시작됐다. 샌디는 서쪽의 한랭전선, 북쪽의 북극전선과 합쳐지며 뒤죽박죽의 패턴을 보였다. 대선을 1주일 앞두고 찾아온 샌디가 미 정계에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지 궁금하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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