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현지시간) 오전 10시 뉴욕 맨해튼 유엔본부 총회장.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선출을 위한 선거를 앞두고 각국 대표들이 회의장에 속속 입장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외교관들 사이로 막판 표 단속에 나선 김숙 주유엔 한국 대사, 설경훈 차석대사 등 한국 외교관들의 발길이 바빠졌다. 웃으며 회원국 대표들과 인사를 나눴지만 표정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10시30분 시작된 1차 투표 결과는 한국 진영을 더 긴장케 했다. 당초 1차 투표에서 회원국 193개 중 3분의 2인 128표를 얻어 깔끔하게 선거를 마무리한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의장국인 캄보디아가 예상외로 62표를 얻으면서 한국은 116표에 그쳤다. 이에 3위를 차지한 부탄을 제외하고 다시 양국 간 투표가 이뤄졌다. 개표를 위한 30분간의 초조한 기다림이 이어졌다. 결국 한국은 149개국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15년 만에 다시 2년 임기의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자리를 꿰찼다.

한국은 앞으로 2년간 안보리 회의에 참석할 수 있게 됐으며 의장국 순회 원칙에 따라 내년 2월과 2014년 5월 의장국을 맡게 된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앞으로 북한·북핵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주도권을 쥐게 됐다. 그동안은 국제무대에서 한반도 현안이 논의될 때마다 유엔본부 라운지를 어슬렁거리며 회의 내용을 엿듣는 ‘귀동냥 외교’에만 의존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 안보리 재진출로 한반도 문제에 적극 개입,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2009년 북한의 핵실험이나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건 당시처럼 안보리 논의에서 소외될 일도 없게 된 것이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19일 내외신 브리핑에서 “안보리 재진출로 한반도 평화·안정을 좀더 확고히 하는 데 기여하고 국제사회의 다양한 안보현안 해결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됐다”며 “한국의 국제적 위상 제고와 외교역량 강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북한의 추가적인 대남 도발을 방지·예방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유엔안보리가 대북제재를 주관하고 국제사회의 정당한 무력사용을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국제기구이기 때문이다.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이사국들이 한 나라의 전체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을 한다”며 “우리가 2년간 비상임이사국으로 활동하는 동안 북한도 함부로 도발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사국으로 선출되기까지 걸림돌도 적지 않았다. 유엔 내에서는 한국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하고 최근 주요 20개국(G20) 회의, 핵안보정상회의 등 굵직한 국제행사를 잇따라 개최하는 데 대한 견제여론도 상당했다.

하지만 정부는 배수진을 친 전방위 외교전으로 승부했다. 김 대사는 지난해 5월 유엔에 부임한 뒤 ‘야전사령관’으로 외교전을 지휘했다. 주유엔 한국대표부 직원들은 ‘비상 근무체제’에 돌입, 직접 발로 뛰며 각국 대표들을 접촉했다. 앞서 김 장관은 지난달 말 제67차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 수십 개국의 수석대표들과 양자회담을 하며 외교전을 펼쳤다.

이번 안보리 재진출로 한국은 보다 더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는 주문이 나온다. 그간 대북제재 등 한국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주제에 한정된 활동을 했던 데서 벗어나 평화유지, 빈곤문제, 환경 등의 분야에서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김 장관은 “15년 전에 비해 한국의 국제적 활동이 많아지고 경제력도 그만큼 커졌기 때문에 이제는 더 큰 책임감을 갖고 국제사회에 기여하고 공헌하는 활동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국제 평화와 안보 유지를 담당하는 유엔의 사실상 최고 의사결정 기구. 회원국에 권고만 할 수 있는 다른 기구와 달리 결정사항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강제력을 갖는다. 국제 분쟁을 조정하거나 분쟁 지역에 군대를 파견하고 경제 제재, 무력사용을 승인하는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임기 제한 없이 거부권을 갖는 5개 상임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과 2년 임기의 10개 비상임이사국으로 구성된다.

뉴욕=유창재 특파원/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