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작가가 읽어주는 세계문학] <60· 끝>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참, 찬란한 신세계"

아무도 모르는 것에 대해 말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도 모르니까. 그러나 한편 모두가 아는 것에 대해 말하기도 쉽지는 않다. 모두 아니까. 모두 아는 것에 대해 감히 어떤 말을 보탤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나는 지금 고유명사이면서 보통명사이고 나아가 고전의 대명사인 셰익스피어에 대해 말하려 한다. 그의 마지막 작품 『템페스트』를 한 번 읽었더니 또 읽고 싶어졌고 하여 또 읽었더니 뭔가 말하고 싶어졌던 것이다. 좋은 노래를 듣고 또 듣다보면 저도 모르게 따라 부르고 싶어지는 것처럼.

템페스트는 폭풍이라는 뜻이다. 바다 한가운데서 폭풍을 만난 배가 난파당한 후 몇몇 사람이 구사일생으로 섬에 다다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폭풍은 사실 주인공 푸로스퍼로가 마술로 빚어낸 것이다. 그는 밀라노의 대공이었으나 마술 연마에만 힘쓰다가 동생 앤토니오와 나폴리 왕 알론조의 계략에 의해 쫓겨난 인물이다. 어린 딸 미랜더와 함께 망망대해에 버려진 그는 충신의 도움으로 죽지 않고 외딴 섬에 당도하여, 그곳에 살던 괴물 캘리밴과 공기의 정령 에어리얼을 하인으로 삼고 살았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앤토니오와 알론조 일행이 탄 배가 그곳 근해를 지나가는 것을 보고 복수를 위해 폭풍을 일으켜 그들을 섬으로 유인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알론조의 아들 퍼디넌드와 자신의 딸 미랜더가 사랑에 빠지자 모두를 용서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마술 책을 버린다.

푸로스퍼로는 아마도 셰익스피어의 분신일 것이다. 그가 전 생애를 통해 갈고닦았던 마술을 마지막 순간에 포기하는 것처럼 평생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해온 셰익스피어도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펜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주인공인 그보다 더 돋보이는 캐릭터는 캘리밴이다. 캘리밴은 시종 악마 같은 존재로 묘사되지만 독자는 그의 악함을 이해할 수 있다. 원래 자신의 것이던 섬을 빼앗기고 노예로 전락한 그가 푸로스퍼로에게 반발하는 대목을 보자.

“당신은 나에게 말을 가르쳐주었소. 그 덕으로, 내가 얻은 이득은 저주하는 법을 아는 것이 전부요.” 식민 치하 백성으로서 캘리밴은 식민 통치자의 언어를 사용하여 푸로스퍼로와 미랜더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그런데 그 표현이 상당히 문학적이다. “나의 어머니가 오염된 늪에서 까마귀의 깃으로 쓸어모은 독로가 당신들 두 사람 위에 떨어지리라! 남서풍이 당신들에게 불어서 그 몸에 온통 물집이 생기게 하리라!”

물론 문학적이기로는 푸로스퍼로의 응수도 만만치 않다. “이 욕설에 대해서는 오늘밤 내가 널 쥐가 나도록 만들겠고, 옆구리가 쑤셔서 숨을 쉬기 힘들게 하겠다. 고슴도치들로 하여금 만물이 잠든 고요한 한밤중에 그들이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전부 너를 찌르는 일만을 하도록 하겠다. 네가 벌집같이 꼬집혀서, 벌집을 만드는 벌들이 쏘는 것보다 더 아프도록 만들겠다.”

비경제적이고 비과학적인 수사들의 향연. 요즘 세상에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혹 있다면 나는 그에게 매혹당할 것이다. 한 단어로 말할 수 있는 것을 두 단어로 표현하지 않는 것은 분명 재능이지만, 한 단어로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을 두 단어로 어렵고 새롭게 표현하는 것 또한 재능일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셰익스피어 작품의 감동은 그것의 내용뿐 아니라 표현에서도 나온다. 『템페스트』만 보아도 그렇다. 시적 운치가 서린 비유들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무대 언어 특유의 생동감이 넘치는 대사들은 지문 없이도 작품의 줄거리를 장악하고 인물의 캐릭터를 완성한다. 이상적인 문학 작품이 이야기의 집인 동시에 언어의 집이라면 이 작품은 그 이상적인 예라 할 것이다. 결국 셰익스피어는 만년에 마술 책을 폐기하기 직전 생애 최고의 마술을 선보였다. 그래서 독자들을 멋진 신세계로 이끌었다.

“참, 찬란한 신세계로다!”

섬에서만 자라 아버지 외에는 인간을 본 적이 없는 미랜더는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육지 사람들을 보고 경이에 차 외친다. 올더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의 제목을 바로 여기서 따왔다던가. 그러나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풍자지만 셰익스피어의 멋진 신세계는 감탄이다. 사랑과 용서와 화해의 기운으로 가득한 세상에 대한 희원이다. 서로 증오하고 잘잘못을 따지고 치고받기에 삶은 너무도 짧다. 짧고 덧없고 그래서 아름답다. 작품 말미에서 푸로스퍼로는 말한다. “우리는 꿈과 같은 존재이므로 우리의 자잘한 인생은 잠으로 둘러싸여 있다.”

[한국 작가가 읽어주는 세계문학] <60· 끝>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폭풍이 지나간 후의 고요 속에서 얻은 깨달음일까. 그것이 노작가 셰익스피어가 돌아본 삶일까.

쓸데없이 말이 길었다. 상찬이 백 마디인들 무슨 소용이랴. 책은 읽어야 맛인 것을. 읽자. 읽으면 알게 될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왜 셰익스피어인지. 고유명사였던 그의 이름이 어떻게 보통명사가 되고 대명사가 되었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왜 자꾸 『템페스트』에 대해 뭔가 말하고 싶어 했는지를 말이다.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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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적 솜씨로 빚어낸 선과 악의 투쟁

♣'템페스트'줄거리


이자 가장 사랑받는 작가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작품이다. 극작가로서의 삶을 정리하고 은퇴를 준비하던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에서 유한한 삶의 덧없음과 생의 아름다움을 예찬한다. 형식적으로 『템페스트』는 삼단일(three unities)을 준수한 희곡으로, ‘삼단일’이란 하루 시간 안에, 한 장소에서, 한 줄거리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는 규칙을 말한다. 셰익스피어는 단 하루 동안 복수와 관용, 용서, 화해는 물론 선과 악의 투쟁에 관한 이야기를 천재적인 솜씨로 빚어낸다.

밀라노의 대공 푸로스퍼로는 마술 연구에만 몰두하며 정사를 소홀히 한다. 동생 앤토니오는 나폴리의 왕 알론조의 힘을 빌려 형인 푸로스퍼로에게서 대공의 지위를 찬탈한다. 푸로스퍼로는 보트에 실려 세 살 난 딸 미랜더와 함께 망망대해로 쫓겨나는데, 인자한 노대신 곤잘로 덕분에 귀중한 마술서적을 가지고 떠날 수 있게 된다. 푸로스퍼로가 딸 미랜더와 함께 당도한 곳은 악의 마녀 시코랙스가 살던 무인도. 시코랙스는 생전에 짐승과 같은 괴물 캘리밴을 낳았고, 에어리얼이라는 정령을 소나무 속에 가두고 노예로 부렸다. 푸로스퍼로는 에어리얼을 구해주고, 에어리얼은 은혜에 보답하고자 푸로스퍼로를 주인으로 모신다. 괴물 캘러밴 역시 푸로스퍼로의 하인이 된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 알론조 왕과 앤토니오는 이웃나라 왕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귀국하는 길에 폭풍우를 만난다. 이 폭풍우는 마법을 완성한 푸로스퍼로가 일으킨 것이었고, 푸로스퍼로는 복수를 위해 이들을 섬으로 유인하는데…….

[한국 작가가 읽어주는 세계문학] <60· 끝>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원제: The Tempest

저자: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

발표: 1611년

분야: 영미문학 한글번역본

제목: 템페스트

옮긴이: 이경식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006(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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