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세중 씨(32)는 18일 서울의 한 백화점 남성 전용관에서 100만원을 넘게 썼다. 그의 쇼핑백에는 카디건과 청바지, 면도용품 등이 들어 있었다. 김씨는 “예전엔 여자친구와 함께 쇼핑할 때가 많았지만 요즘엔 혼자 백화점을 찾는다”며 “남성관에선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쇼핑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롯데, 현대, 신세계 등 백화점들이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남성’을 타깃으로 잡았다. 올가을 매장 개편에서 경쟁적으로 ‘남성관’을 늘리고 명품 브랜드들의 남성 단독매장을 오픈하는 등 ‘그루밍족’(패션과 미용에 투자하는 남자들)을 잡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신세계는 지난달 지방시의 첫 남성 단독매장(사진)을 서울 강남점에 열었다. 앞서 이 백화점은 지난해 10월 강남점 6층을 통째로 ‘남성 전문관’으로 바꿨다. 구찌, 버버리, 돌체앤가바나, 입생로랑, 토즈, 로로피아나 등 6개 브랜드의 남성 단독매장이 국내에 첫선을 보인 것이다. 의류뿐 아니라 안경, 구두 등 잡화까지 한 층에서 쇼핑할 수 있는 ‘원 플로 원스톱 쇼핑’을 컨셉트로 잡았다. 신세계 강남점은 전문관을 오픈한 뒤 올해 1~9월 남성 매장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0.1% 성장했다. 같은 기간 신세계 전체 매출 증가율은 7.2%에 그쳤다.

신세계의 성공을 지켜본 롯데백화점도 지난달 21일 가을 정기 개편에서 서울 소공동 본점 5층을 ‘남성 전문관’으로 이름 붙이고, 면적도 국내 최대인 4910㎡로 넓혔다. 수입 브랜드 비중을 늘리고 구두 매장은 모두 지하로 내려보냈다. 엠포리오 아르마니, 버버리 맨즈 등 명품 단독매장도 명품관이 아닌 남성 전문관에 배치했다. 이를 통해 롯데 본점 남성 의류매장의 명품 구성 비율은 6%에서 20%로 높아졌다.

현대백화점은 내년 5월 무역센터점에 국내 최대 규모(1157㎡)의 남성 액세서리 편집숍을 낼 계획이다. 지난달 27일에는 무역센터점 1층에 ‘루이비통 맨즈 유니버스’라는 남성 단독매장을 열었다. 백화점 1층에 남성 매장이 들어선 것은 처음이다. 명품 브랜드들도 한국 남성복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 것이라고 현대백화점 측은 설명했다.

그동안 유통가에선 ‘불황에는 남성이 가장 먼저 지갑을 닫는다’는 것이 정설이었는데, 백화점들이 남성 매장을 경쟁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분석이다. 이혜원 신세계 남성의류 바이어는 “결혼 적령기가 늦춰지면서 경제력을 갖춘 30~40대 남성들이 패션과 문화의 핵심 층으로 떠올랐다”며 “고급 의류 브랜드들도 이에 맞춰 남성 단독매장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의 남성 고객 매출 비중은 2009년 25%에서 올해(1~9월) 31.2%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신세계백화점의 남성 매출 비중도 24.7%에서 31.3%로 늘었다.

한편 일본에선 2003년 도쿄 이세탄백화점에 남성 전용관이 생기는 등 10년 전부터 남성이 백화점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하영수 롯데백화점 남성MD 팀장은 “한국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일본처럼 외모에 관심을 쏟는 남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비오템, 크리니크, SKⅡ 등 남성용 고급 화장품 매출도 15% 이상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

■ 그루밍족

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자들을 말한다. 마부(groom)가 말을 빗질하고 목욕시키는 데서 유래했다. 이들은 자신을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피부와 두발, 치아 관리는 물론 성형수술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인터넷 사이트에선 관련 동호회도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