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 달아 파는 옷 '대박'…"킬로파숑은 불황이 준 선물"
지난 1일 이탈리아 밀라노 산바빌라 광장 인근의 옷가게 킬로파숑(KILO FASCION). 옷을 하나 골라 점원에게 내밀었더니 상품코드를 찍고 저울에 옷을 얹었다. 350유로짜리(약 53만원) 가격태그가 붙은 고급면 소재 흰색 셔츠였다. 무게를 확인한 점원이 불러준 가격은 60유로(약 9만원).

무게 달아 파는 옷 '대박'…"킬로파숑은 불황이 준 선물"
‘무게를 달아 명품 옷을 판다’는 새로운 발상으로 이탈리아 패션계를 흔들고 있는 ‘킬로파숑’ 매장은 오후 5시 문닫을 무렵인데도 분주하게 드나드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이월상품만 파는 이 매장은 브랜드 가치 출시일 등에 따라 ‘굿’ ‘베터’ ‘베스트’로 분류해 무게당 가격을 책정, 제품의 정가보다 최소 40%에서 최대 90%까지 할인된 가격을 책정한다.

국내에선 지난 4월 롯데마트가 킬로파숑을 벤치마킹해 g당 30원에 옷을 달아 파는 ‘킬로패션’ 행사를 열어 2주일 만에 티셔츠 50만장을 ‘완판(완전판매)’하기도 했다.

킬로파숑 방식의 판매를 세계 최초로 고안한 이탈리아 패션유통업체 릴라인터내셔널그룹(Lilla SpA)은 지난해 3월 밀라노에 첫 매장을 낸 뒤 월평균 150만유로(약 2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딱 6개월만 문을 여는 임시매장 형태로 운영한다. 한 지역에서 영업이 끝나면 다른 곳으로 옮겨가 다시 매장을 여는 방식이다. 다만 기자가 찾은 밀라노 1호점은 고객의 요청에 따라 내년 1월 말까지 영업을 연장하기로 한 상태다. 현재 밀라노 베로나 로잔느(스위스)에 매장을 열었고 파리 런던 로마 모스크바 등에도 곧 거점을 확보할 예정이다.

종전 의류 도소매를 통해 3000만유로의 매출을 올리던 릴라는 킬로파숑을 앞세워 올해 5000만유로 진입을 앞두고 있다. 2010년 남유럽 재정위기 발발 이후 무려 3000여개의 섬유패션업체들이 도산한 이탈리아에서 릴라의 비약적인 성장세는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 주요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는 “불황이라는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혁신적 사례”라고 치켜세웠다. 아무도 새 옷을 사려 하지 않는 불황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았다는 분석이다.

‘옷의 무게를 달아 팔자’는 생각은 릴라의 창업자 주세페 카빌리아 회장이 떠올렸다. “불황에 맞는 패션사업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던 2010년, 그는 야채 고기 등을 저울에 달아 판매하는 슈퍼마켓이 어떻게 상품군을 나눴는지 분석했다. 이를 패션에 접목시키는 과정에서 1년 동안 500~600개의 품목을 대상으로 수천번의 시뮬레이션을 벌였다. g당 최적의 가격을 산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1975년에 설립된 릴라는 킬로파숑 사업 외에 돌체앤가바나 구찌 프라다 질샌더 등 600여개 브랜드의 이월상품을 대량으로 구입, 소매점에 판매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도매업을 시작한 패션유통 기업으로 ‘마가치니 F(MAGAZZINI F*)’라는 종합쇼핑몰과 이월상품을 파는 아울렛을 운영하고 있다. 킬로파숑에 이어 현재 ‘터치 앤드 고(TOUCH&GO)’라는 ‘70% 할인매장’도 준비 중이다. 오랜 기간 유대관계를 맺어온 의류제조 공장과의 파트너십 덕분에 가능한 판매 방식이다.

릴라는 20여개 국적을 가진 200명의 직원들이 꾸려가고 있다. 파티 형태의 사내 워크숍과 가족 모임, 야근 금지 등은 릴라그룹이 자랑하는 경영원칙이다.

밀라노=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