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간 광주은행에서 자금운용 업무를 했던 민찬기 씨(56·사진). 그는 2003년 직장을 잃었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 경영실적이 나빠지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뤄진 탓이다. 심각한 생활고가 시작됐다. 중·고교에 다니던 아들 둘의 학원 수강을 중단시켜야만 했다. 후두암을 앓고 있던 아버지에게 용돈은 물론 치료비조차 드리지 못했다.

그리고 7년 후인 2010년 12월. 민씨에게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 ‘민찬기 운동처방연구소’를 열고 사업을 시작한 것. 그는 “20년 넘게 헬스를 해왔는데 이를 살려 1인 창업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씨는 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가장 적합한 운동 종류, 방법, 횟수 등을 설명해 준다. 일상생활의 나쁜 습관으로 병이 생기는 것을 방지해주는 ‘건강도우미’ 역할도 한다. 현재 초등학교 보훈교육원 사회복지관 등을 중심으로 강연을 하고 있다. 수강생은 매회 50~250명에 달한다. 기업 고객을 위한 온라인 강연도 지난 8월 시작했다.

재능 기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에서 주최하는 무료 건강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또 퇴직자들에게 창업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강연도 하고 있다. 그는 “청소년과 노인들에겐 돈을 받지 않는다”며 “내 생활의 가장 큰 활력소”라고 말했다.

민씨는 연구소를 열기 이전엔 재취업에만 매달렸다. 그동안의 경력을 토대로 어렵지 않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여러 번 미끄러졌다. 이뿐만 아니다.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리자 다단계 판매, 도산 직전의 중소기업에서 연락이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일을 하게 해줄 테니 융자를 받아 운영자금을 지원해 달라고 접근해오곤 했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스스로 깊은 자괴감에 빠질 때가 있었다”고 돌아봤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도 좌절을 맛봤다. 민씨는 2006년 아스팔트 포장업체인 아리코에 들어가 4년간 영업을 했다. 하지만 회사가 다른 기업에 팔리면서 다시 실직자가 됐다. 일자리를 구해보려 했지만 기술직이 아닌 사무·관리직 출신이란 이유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더 이상 팔리지 않는 재고 상품이 된 기분이었지요. 현실을 인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그의 선택지는 창업이었다. 한국무역협회가 운영하는 ‘중견전문인력 고용지원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소상공인진흥원의 ‘시니어창업스쿨’ 과정을 알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창업을 서두르기보다는 일단 교육을 받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교육 한 달 만에 연구소를 열었다. 민씨는 “나만의 특화된 장점을 살려 창업을 한다면 실패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며 “마침 은행에 다닐 당시 따뒀던 운동처방사 자격증이 생각나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른 퇴직자들에게도 가능성 낮은 재취업보다는 창업을 권한다. 민씨는 “재취업에 성공한다고 해도 몇 년밖에 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20~30년 후를 내다보고 창업에 도전하는 것도 새로운 인생을 여는 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 “근육은 자기가 아니면 만들지 못하듯 기회도 스스로 찾아내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