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8주년 한경 특별기획 - 위기는 기회다

3명이 창고서 시작한 벤처…16억 달러 받고 구글에 매각
인생의 정점에서 찾아온 병마…수술 전날 너무 무서웠다

싸이 '강남스타일' 성공은 창의적 콘텐츠와 기술의 결합
기업은 사회공헌 중요하지만 혁신 상품·서비스로 기여해야
스티브 첸 "뇌종양으로 죽을 고비 넘긴후 '내가 갈 길' 깨달아"

“당연히 봤죠. 싸이의 말춤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유튜브 창업자 스티브 첸(34)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아느냐는 질문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회의가 방금 끝났다”며 사무실 구석에 있는 싱크대에서 직접 컵을 씻어 커피를 타 왔다. 이어 회의실 내 지저분해 보이는 소파에 아무렇게나 앉은 뒤 졸려보이는 눈을 비비며 “어제 개발회의를 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자 상태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머리는 무스로 삐죽삐죽하게 세워 멋을 냈고 귀걸이도 했지만, 흰색 셔츠는 평범했고 청바지는 구겨져 있었다. 거리에서 마주치면 세계적 인기를 얻고 있는 동영상 공유 사이트 창업자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외모였다. 이곳 실리콘밸리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개발자처럼 보였다. 한국경제신문 창간 48주년 기념 특별인터뷰는 지난 5일 미국 캘리포니아 샌머테이오의 벤처기업 아보스에서 세 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를 봤나요.

“물론이죠! 아내가 제일 먼저 알려줬습니다. 동영상이 퍼지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그날 회사에 가 보니 이미 동료들도 다 알고 있더군요. 한마디로 ‘대단하다(amazing)’고 봐요.”

▷덕분에 유튜브도 한국에 더 많이 알려지게 됐습니다.

“유튜브를 이루는 두 가지 요소는 콘텐츠와 기술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강남스타일은 정말 창의적이고 뛰어난 콘텐츠예요. 이런 콘텐츠가 전 세계 수많은 사용자가 동시에 하나의 동영상을 봐도 끊기지 않는 유튜브 기술과 결합하면서 일을 낸 겁니다.”

▷유튜브의 시작은 어땠습니까.

“지금은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지만 출발은 수많은 실리콘밸리 정보기술(IT) 기업처럼 보잘것없었죠. 채드 헐리, 자웨드 카림 등 직장(페이팔) 동료들과 함께 2005년 차고에 모여 창업했습니다. 동영상을 이용한 뭔가를 하고 싶었습니다. 당시 핫오어낫닷컴(HotorNot.com) 등 이성과 관련된 사이트들이 인기를 얻고 있었기 때문에 동영상을 이용해 데이트 상대를 찾는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사업 영역을 확장한 것이군요.

“서비스를 개발하던 중 문득 ‘데이트든, 여행이든 어차피 ‘콘텐츠’라는 점에서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좁은 영역에 머무르지 말고 모든 콘텐츠를 다뤄보자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여기에 사람들이 공유를 좋아한다는 점을 반영해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오늘날의 유튜브를 만들었습니다.”

▷아이디어를 바꾸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았습니까.

“벤처기업의 최대 장점 중 하나가 기동성이죠. 말 한 마디, 전화 한 통으로 방향을 돌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의 유튜브가 다시 데이트 동영상 사이트로 돌아가겠다고 한다면 최소 6개월이 걸릴 겁니다. 무수한 회의를 거쳐야 하니까요. 회사 규모가 커질수록 리더는 결정을 바꾸기 어려워집니다. ”

▷유튜브 초창기 시절은 어땠습니까.

“처음에는 지인들 외에 별로 사용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용자를 늘리기 위해 아이팟을 상품으로 주는 이벤트까지 벌였지만 좀체 늘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금 압박도 많이 받았고요. 창업한 지 다섯 달 정도 지나니 하루평균 가입자가 200명을 넘어서더군요.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어요.”

▷사용자들이 갑자기 몰리면서 여러 문제가 생겼을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처음에 매월 대당 200달러를 넘지 않았던 서버 사용료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회삿돈이 아니라 제 카드로 결제했는데 월 신용 한도를 늘려야 하는 상황이 왔습니다. 6000달러, 1만2000달러, 다시 3만달러… 신용 한도를 배로 늘려 달라고 카드 회사에 부탁하러 가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물론 저만 고생한 것도 아닙니다. 직원 모두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했습니다. 여러 언론매체가 “유튜브의 성장 속도는 놀랄 만큼 빠르다”고 떠들었지만 그만큼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은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합니다.”

▷결정적으로 성공을 예감한 때는 언제였나요.

“2005년 말 수백만명의 사람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던 나이키 광고와 NBC의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쇼’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을 때입니다. 하루 1만명 이상의 사용자가 몰릴 때부터 철저히 대비를 했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동시 접속이 발생해도 문제가 없었죠. ”

▷왜 갑자기 유튜브를 팔았습니까.

“나를 포함한 직원 모두가 한계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해외 진출, 모바일 서비스 시작 등으로 하루 24시간 꼬박 일에 매달리는 직원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데이터센터도 필요했고 서버, 인터넷 망도 확충해야 했습니다. 큰 기업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데 모두가 찬성했습니다. 더 이상 우리 힘으로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겁니다.”

▷정점에 선 그때 뇌종양에 걸렸습니다.

“2007년 7월23일 CNN과 함께 유튜브를 이용한 민주당 대선 공개 토론을 진행했는데 힐러리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등의 대권 주자들이 모두 나왔습니다. 유튜브를 선거에 활용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미국 내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토론회가 끝나고 캘리포니아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뇌종양이 발병했습니다. 머릿속이 빙글빙글 도는 기분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가 병원 응급실에서 깨어났습니다. 당시 잠을 거의 자지 못했기 때문에 피로 때문에 쓰러진 줄 알았는데 정밀검사 결과 뇌종양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

▷무척 당혹스러웠겠군요.

“성공의 정점에서 뇌종양에 걸린 것이 운명의 장난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에서 사람들이 알아볼 정도로 유튜브가 유명해진 것, 10억달러가 넘는 금액에 회사를 판 것이 모두 동화 속 이야기처럼 느껴졌어요. 마치 남의 인생을 보고 듣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습니다.

▷죽음의 공포와 맞닥뜨려 보니 어땠나요.

“발병한 뒤 몇 번이나 정신을 잃게 되자 죽음은 예측하지 못할 때 찾아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안감이 밀려오고 허무했습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의욕이 떨어지고, 업무도 최소한도로 줄였습니다. 당시 비싼 물건을 갑자기 사들이기도 하고, 운동이나 여가 활동에 집중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수술을 결정했는데, 내 운명이 내 손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이 너무 슬펐습니다. 수술 전날 밤 너무 외롭고 무서웠어요.”

▷건강을 위해 좀 쉴 법도 한데 왜 회사를 새로 차렸나요.

“뇌종양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나니 ‘가장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전에 다니던 이베이와 구글은 안정적인 직장이고 연봉도 높지만 그 회사들에선 미래를 상상할 수 없었어요. 죽음의 고비를 넘겼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아보스는 어떤 회사입니까.

“아보스는 온라인 잡지 서비스, 즐겨찾기 공유 서비스 등 온라인 서비스를 개발합니다. 실리콘밸리에 28명, 중국에 20명, 뉴질랜드에 8명가량이 근무합니다. 유튜브와의 차이점은 직원 수와 펀딩 여부입니다. 유튜브는 세 사람이 시작했고 펀딩을 받지 않았지만 아보스는 직원 수가 50명이 넘으며 펀딩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덕분에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죠. 유튜브처럼 한 가지 서비스에 집중하지 않고 여러 서비스를 동시다발적으로 준비할 수 있습니다.”

▷새 회사에선 어떤 방식으로 일합니까.

“하루에 6시간 정도 자고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일을 합니다. 두 살 난 아들 제이든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월·수·금요일에는 늦게 출근합니다. 가족이 생기니 생활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예전에 비해 쉽지 않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자본주의는 좋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기간에 걸쳐 관찰해 보면 여러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해소될 것으로 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빌&멜린다 게이츠재단을 세웠습니다. 자본주의에서 성공한 사람이 사람들을 효율적으로 돕는 방법입니다.”

▷기업 경영에 대한 철학이 있습니까.

“고용이나 사회공헌도 중요하지만 기업은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유튜브만 해도 가치 있는 동영상을 세계로 전파함으로써 사회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에 되돌려주는 형태가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

스티브 첸은 누구 - 대만서 8세때 이민…한국인 부인과 1男

대만 타이베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영국계 무역회사에 다녔고 어머니는 회계사로 풍족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시카고 지사 운영 제안을 받으면서 8세 때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중부 일리노이주에 정착했다.

첸의 부모는 자녀들에 대한 간섭이 심한 편은 아니었지만 교육열은 무척 높았다. 집에 있던 애플 컴퓨터를 이용해 초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프로그램을 짰다. 웬만큼 우수한 두뇌를 갖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는 일리노이 수학과학고교(IMSA)에도 진학했다. 자유분방한 성격 탓에 한때 술을 마시고 수업을 빠지기도 했지만 마음 먹으면 밤새 프로그램을 짜는 등 컴퓨터 엔지니어로서의 자질을 착실하게 키워나갔다.

일리노이대 컴퓨터공학과를 중퇴한 뒤 당시 벤처기업이던 전자결제대행업체 페이팔에 초기 멤버로 합류했다. 페이팔 상장으로 백만장자가 됐지만 페이팔을 인수한 이베이의 조직문화가 싫어 2005년 유튜브를 창업했다.

유튜브를 구글에 매각한 직후 뇌종양을 발견, 1년6개월여의 투병 끝에 수술을 통해 완치했다. 지난해 초 벤처기업 아보스를 차려 유튜브 공동창업자 채드 헐리와 함께 온라인 잡지 진(Zeen) 등 다양한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2008년 3월 구글코리아를 방문했을 때 만난 직원 박지현 씨와 결혼,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샌프란시스코=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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