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대선 정국으로 속속 돌아오고 있는 원로들이다. 한때 안철수 후보의 멘토를 자처하던 윤 전 장관은 며칠 전 놀랍게도 문재인 민주당 후보 캠프로 갔다. 김영삼 정부에서 장관을 역임했고 16대 총선 때는 한나라당 기획단장을 지냈던 대표적인 여당 인사의 변신이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한때 안 후보의 멘토 역할을 했던 김 전 수석은 박근혜 후보 진영에서 행복추진위원장을 맡고 있고, 민주당의 지주인 DJ·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좌했던 이 전 부총리는 안 후보 측근으로 활약 중이다.

여당 출신 인사가 야당 후보 캠프로, 야당 출신은 무소속이나 여당 후보 진영으로 옮겨 가는 대이동기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선거대책본부장을 지냈던 박선숙 전 의원은 안 후보의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이 되어 나타났다. 그동안의 경력이나 평소 주장과는 다른 진영으로 발길을 향하는 정치적 배반의 시대요, 이념의 혼동 시대라는 말이기도 하다. 이른바 폴리페서들도 성업 중이다. 후보 캠프마다 멘토니 자문역이니 하는 정치 겸업 교수들이 북적대고 있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캠프를 합치면 500명도 넘어 대학 하나를 통째로 옮긴 듯하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판이다. 모두가 정치투쟁에 빨려들고 있다. 마치 이번에 기회를 잡지 못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식으로 정치광기에 말려들고 있는 것이다.

대선후보 자체가 넘치고 있다. 이미 출마 의사를 밝힌 후보만 빅3 말고도 ‘청소년 지킴이’로 불리는 강지원 변호사, 민병렬 진보당 대표 직무대행, 이정희 전 진보당 대표, 대검 중수부장 출신인 이건개 변호사까지 헤아리기도 어렵다. 여기에 정운찬 전 총리, 단골후보 허경영 씨 등의 출마설도 끊이지 않는다. 과연 몇 명이 더 나올지 예측 불허다. 모두가 국민 아닌 정치 지도자가 되려고 하고 대선을 통해 권력에 동참하겠다고 줄을 선다.

멘토를 자처하는 이들이 넘치지만, 정작 후보들이 부인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안 후보는 지난해 말 윤 전 장관이 실세 멘토라는 말이 나오자 “윤 전 장관이 멘토라면 멘토가 300명쯤 된다”고 일축하기도 했다. 윤 전 장관이 문 후보 캠프에 들어간 것은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 전 부총리도 비슷한 케이스다. 안 후보 측은 이 전 부총리가 경제멘토라는 보도가 나간 지 하루 만에 그저 단순 고문이라며 격하시켰다. 이 전 부총리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공직에 나서지도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지만 단번에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온 지식계가 정치에 중독되고 정신을 잃은 채 돌아가는 상황이다. 이름이 조금 알려졌다 하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고, 그에 맞춰 퇴직 관료와 폴리페서, 변호사,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명함을 흔들어 댄다. 멘토인지, 책사인지, 모사꾼인지 분간도 안 된다. 2006년 열린우리당 후보로 서울시장에 출마했던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조차 문 후보가 윤 전 장관을 영입한 데 대해 “너무 하다”고 비판할 정도다. 그녀 자신은 또 안철수 그룹의 숨은 후원자라는 루머까지 나돈다. 정치 경력도, 정강 정책도 없이 대중 인기만으로 정치판을 뒤흔들고 있는 안철수 현상이 만드는 우리 정치의 모습이 이렇다.

국정 이념과 가치는 없고 오로지 파당만 존재하는 대혼란기다. 대선 후보들은 천국을 만들어주겠다는 포퓰리즘으로 국민의 판단을 흐리고, 3040세대와 5070세대들은 저마다 한 자리 차지하려고 바쁘게 뛴다. 큰 스승은 없고 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들만 설친다. 이 나라는 어디로 가려고 이러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