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스 놓는 의사들] "지방선 아파트 준대도 외과 의사 못구해요"
최근 안방극장에는 의사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KBS ‘브레인’, MBC ‘닥터진’ ‘골든타임’, SBS ‘신의’, OCN ‘신의 퀴즈’ 등 지상파와 케이블방송을 통틀어 전파를 탔거나 방송 중인 메디컬 드라마만 5편에 이른다. 이달엔 MBC ‘마의’, tvN ‘제3병원’ 등 두 편의 의학 소재 드라마가 또다시 전파를 탔다. 메디컬 드라마가 유행처럼 이어진다. 시청자들은 피 튀기는 수술 장면, 응급 환자의 처치법을 놓고 외과 의사들끼리 다투는 모습 등을 보며 기존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리얼리티’를 느낀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드라마와 많이 다르다. 최근 몇 년 새 대학병원에선 메스(수술용 칼)를 선택하는 외과 의사들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수술 꺼리는 의대생…외과·산부인과 기피
[메스 놓는 의사들] "지방선 아파트 준대도 외과 의사 못구해요"
지난달 마감한 2012년 후반기 전공의 모집 원서 접수 현황을 분석한 결과 외과 계열은 이른바 ‘빅5’로 분류되는 대형병원(아산 삼성서울 서울대 가톨릭서울성모 세브란스)조차 미달이 속출했다. 특히 서울대병원은 외과에서 3명을 모집했지만 단 한 명의 지원자도 없었다. 서울아산병원 비뇨기과도 지원자가 전무했다. 세브란스 산부인과(모집정원 5명), 비뇨기과(4명) 등도 지원자를 찾지 못했다. 서울성모병원은 산부인과(6명)·비뇨기과(7명)에서 지원률 ‘제로(0)’를 기록했다.

한양대병원, 경북대병원, 부산대병원, 고려대안암병원 등은 흉부외과 지원자가 아예 한 명도 없었다. 의대생들 사이에 “명문대 병원이라도 외과 계열은 싫다”는 거부감이 확산되고 있는 증거다. 지역병원은 사정이 더 좋지 않다. 심장수술의 대가인 ‘송명근 교수’ 효과로 매년 정원을 채웠던 건국대병원(충주) 흉부외과와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수술한 이국종 교수가 재직 중인 아주대병원(수원) 외과 역시 미달 사태를 빚었다.

산부인과는 이미 기피 전공과가 된 지 오래고, 최근 들어 비뇨기과도 전문의 배출이 쉽지 않다. ‘빅5’ 가운데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을 제외하고 모두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전문의 자격 취득 후 개원해도 미래가 불투명하고, 의대생 중 여학생 비율이 갈수록 늘고 있는 게 원인이다.

최근 1~2년 새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 제네릭(복제약)이 20여종이나 출시되는 등 비뇨기과에 대한 의사 수요가 많을 것 같지만 내과·이비인후과 등에서 비뇨기과 의사가 해야 할 처방(처방료 5000원)을 대신 하는 사례가 늘면서 오히려 비뇨기과 폐업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응급상황 없는 정신과 등 인기

현재 레지던트 지원율만 놓고 보면 최고의 인기 전공과는 정신건강의학과다. 올해 레지던트 지원 현황을 보면 정신과는 162명 정원에 271명이 지원해 1.67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다른 과에 대한 경쟁률을 압도하는 1위다. 의사 전문 헤드헌팅업체 초빙닷컴(대표 조철흔)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45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의 정신과 전문의 평균 월급은 1423만원에 달했다. 2007년(885만원)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액수다.

충남 전남 경북 등의 지방병원에선 정신과 전문의 월급이 2000만원을 넘는 곳도 있다.

정신과 전문의 몸값이 급등한 것은 우울증 치매 등 정신질환자 수가 해마다 증가하면서 수요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 보건복지부는 국내에서 정신질환 치료를 받은 환자 수가 2004년 193만명에서 2006년 225만명,2008년 256만명, 2010년 284명으로 연평균 7.5%씩 증가한 것으로 추산했다.

전국 수련병원의 정신과 레지던트 지원율도 전체 진료과목 중 최고다. 지난해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성모병원은 5명·10명 모집에 각각 10명·22명이 지원하는 등 2 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보였다.

서울대병원도 지난해 정신과 레지던트 9명 모집에 18명이 지원, 전체 평균을 앞질렀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과 교수(44)는 “지방 중소도시의 경우 승용차와 아파트를 제시해도 정신과 의사를 구하지 못하는 사례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재활의학 전문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교통사고 뇌졸중 심장병 등으로 후유증을 겪는 환자가 증가하고 재활·요양병원이 수도권 또는 대도시 외곽에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05년 700만~800만원이던 월급 수준이 최근에는 1300만~1500만원으로 배 가까이 상승했다.

영상의학과도 마찬가지다. 정형외과 산부인과 내과 외과 등이 전문병원으로 탈바꿈하면서 수술 전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 촬영검사와 판독을 늘리자 수요가 크게 늘었다.

마취과와 방사선과, 진단의학과에 대한 인기도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촌의 한 병원 진단검사의학과에 근무하는 전문의 임모씨(35)는 “야근이나 응급 상황이 없고 의료기기에서 나오는 검사 결과만 해독하면 되기 때문에 다른 의사들에 비해 편하다”며 “수술에 대한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외과 등은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이 워낙 크다. 과거처럼 외과에서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이준혁/이해성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