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가 2007년 맥월드에서 아이폰 기술을 소개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이(경쟁사들)! 우리가 벌써 특허등록을 했지.(And boy! have we patented it)’ 특허 중심의 연구·개발(R&D) 전략을 세우지 않으면 한국 기업들의 생존이 불투명합니다. 미래 시장에서 설 땅이 없어질 겁니다.”

김호원 특허청장(54)은 최근 나온 삼성-애플 간 특허 소송전 결과(미국 법원 1심 배심원 평결)에 대해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이번 소송을 단순히 기술 특허뿐 아니라 디자인권 등 다양한 지식재산권 이슈가 종합적으로 묶인 ‘새로운 조류’라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정부와 기업이 새 물살에 올라타지 못한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삼성-애플 간 소송 1심 결과가 국내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이번 소송 결과는 한국 기업 경쟁력이 커져가면서 들어온 복합적 ‘견제구’라고 봅니다. 크게 보면 1980년대 국산 컬러TV 경쟁력이 빠르게 뛰어오르면서 미국의 반덤핑 규제를 받으며 수출 길이 막혀버렸던 게 첫 번째 견제구였습니다. 또 비슷한 시기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가 삼성전자 D램 특허침해를 걸고 넘어진 게 두 번째입니다. 이때부터 삼성이 특허중심경영을 도입했죠. 이번 미국 소송 결과는 삼성뿐 아니라 수많은 중소·중견 협력업체를 포함한 국내 산업 생태계 전반에 던지는 경고로 봐야 합니다.”

▷지식재산권을 존중하는 문화가 없는 게 문제라는 건가요.

“이번 소송전에서 미국 판결의 핵심인 ‘트레이드 드레스’도 2008년부터 미 연방법원이 꾸준히 강조해 오던 신지식재산권입니다. 그럼에도 국내에선 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게 아쉽습니다. 이제 마케팅이나 기술개발에만 올인하고 나중에 지식재산권 분쟁이 생기면 부랴부랴 대처하는 관행을 바꿔야 합니다. 기업들은 최고지식재산책임자(CIPO) 혹은 전담조직을 두고 사내 전문가 육성에 힘써야 합니다.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이라고 해서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향후 급성장이 예상되는 하이브리드카 기술만 하더라도 핵심 특허가 5만8000여건이 되는데, 도요타 닛산 혼다 등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67%가량을 선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특허 출원은 세계 4위 수준이지만, 국제표준화기구(ISO) 국제전기통신연합(ITU) 등에 신고된 표준특허는 지난해 301건으로 전체의 3.5%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식재산권 중심 R&D 전략을 강조하시는데.

“현재 각 부처는 전문가들의 주관적 견해가 반영된 사업계획서를 보고 R&D과제를 선정합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유사·중복 여부를 검토하지만, 사후조정에 그치기 때문에 예산 낭비는 불가피합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R&D를 구상할 때부터 선행특허 등을 조사한 뒤 상표권 디자인권 특허권을 모두 고려한 포트폴리오를 짜야 합니다. 특허청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5년까지 국내 산업을 18대 분야로 나눠 각 분야에 대한 ‘지재권 로드맵’을 구축할 계획입니다.”

▷각국 특허 당국 간 협조도 절실한 시점입니다.

“한·미·일·유럽연합(EU)·중국 특허협력체계(IP5) 수장들과의 협력에도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최근엔 데이비드 카포스 미국 특허청장 겸 상무부 지식재산담당차관, 랜달 레이더 연방순회항소법원(CAFC) 법원장과 연쇄 회담을 갖고 △특허심사정보 통합조회인터넷시스템 개발 △두 기관 간 인력 상호 파견 △대학생 교육 협력 방안 △양국 간 상이한 특허제도 순회 설명회 개최 등의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이번 삼성-애플 소송전에서 보듯 상이한 법체계에 대한 이해가 특허전쟁에서 이기는 첩경이라는 판단에서입니다.”

▷바이오산업에서도 특허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제약업계를 봅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른 허가·특허 연계제가 3년 유예됐지만 2015년부터 시작이 됩니다. 쉽게 말해 오리지널 특허권자의 (묵시적) 동의가 없으면 제네릭(복제약) 약품 허가를 못 내준다는 건데, 제네릭 중심의 국내 제약산업에는 큰 장벽이 될 겁니다. 다국적제약사들이 ‘한국 제약사들이 만든 제네릭 특허침해 여부를 일일이 지켜보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수출하려면 바로 벽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 국내 제약기업이 블록버스터 신약을 개발하려면 원천특허을 내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또 글로벌 제약사들은 오리지널 약 특허가 만료(20년)되면, 제법 등 개량특허를 내서 계속 독점적 사용권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이를 피해가는 ‘회피특허’가 중요합니다. 글로벌 바이오업계를 보면 신약 개발기간과 비용이 막대한 만큼 지식재산권 보호 수준을 굉장히 높이고 있고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액 청구 규모도 막대합니다. 지금부터라도 개념을 잡고 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커 갈수록 상당한 견제가 들어올 겁니다. 11월 발표될 제약산업 발전 5개년 계획에는 반드시 이 내용이 포함돼야 합니다.”

▷중소기업 1000개를 ‘IP 스타기업’으로 육성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신데요.

“올림픽 금메달 받은 사람에게 월계관 씌워주듯, 부처 간 기업 지원을 연계하자는 겁니다. 예들 들면 지식경제부 ‘월드클래스 300’에 선정된 기업, 중소기업청의 글로벌 강소기업 육성사업, 조달청의 우선구매사업 등을 따로 놀게 하지 말자는 거지요. 지난해 IP스타기업 203개를 선정했는데, 앞으로는 타 부처 사업과 동시에 묶어서 매년 150개를 선정해 집중 지원할 계획입니다. 부처들이 호의적이라서 잘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와 관련해 지식재산 창출(R&D)·관리·서비스 인력을 내년부터 2017년까지 총 15만명 양성하는 범정부 계획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만한 인력을 소화할 수요가 산업계에서 있어야 할 텐데요.

“수요 기반 확충과 인력 양성을 동시에 진행해야죠. 지자체와 지역 거점 대학, 기업들이 협력해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이를 산업현장에서 활용하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 중입니다. 조사를 해보니 강원도의 제조업체가 7000개가량 되는데, 등록된 변리사는 30여명에 불과합니다. 이를 위해 지역 지식재산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시·도별 지식재산경쟁력지수를 개발하도록 관련부서에 지시를 해놨습니다. 또 지식재산서비스산업이 일자리 창출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도 체계적으로 분석할 예정입니다. ”

▷침해와 무효 소송이 따로 이뤄지는 국내 법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그동안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국회에서 막혔지요. 전문가들은 관할집중을 하는 게 맞다는 의견입니다.(현재 손해배상청구 및 가처분 등 특허침해소송은 지방법원→고등법원→대법원, 특허무효심판과 권리범위확인심판은 특허심판원→특허법원→대법원으로 이원화돼 있음) 다만 대법원에서는 현 사법체계상 행정소송(취소)과 민사소송(침해)을 같이하는 건 안 맞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일본도 우리와 유사한 문제가 있었으나 결국 관할집중에 성공했습니다. 이제는 법률 수요자 입장에서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가 연내 안을 만들 것으로 압니다.”

▷차기 정부 조직 구성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앞으로는 거시 경제부처보다 미시 경제부처가 큰 힘을 발휘하는 시대라고 봅니다. 금융·부동산 제도는 그 자체로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발달하면 부작용이 생겨 성장 정체를 겪고 경제가 불안정해진다는 것이 과거와 현재 세계 흐름을 볼 때 증명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기반 실물경제에 강한 독일이 유럽에서 유독 빛나는 이유입니다. 앞으로 새 성장동력을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려면 지식재산권에 방점을 두고 관련 부처에 힘을 몰아줘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중소기업과 과학기술, 특허에 방점을 둔 정책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정부기구 편성이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김호원 청장은 30년 공직 정통 경제관료…지식재산위 출범 산파

김호원 특허청장은 1979년 행정고시 23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30년 이상 산업분야 행정에 몸담은 정통 경제관료다.

1983년 상공부 사무관을 시작으로 통상산업부 산업정책과장·투자정책과장·산업기술정책과장, 산업자원부 산업기술국장·산업정책국장 등을 지냈다. 외환위기 직후엔 통상산업부에서 기업구조조정을 위한 정책, 외국인투자유치를 위한 법 개정 실무를 담당했다. 2008년부터는 국무총리실 규제개혁실장, 국정운영2실장을 지내며 지식재산기본법 제정 및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출범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사무관 시절부터 업무에 대한 열정과 의욕이 강해 ‘워커홀릭’으로 불렸다. 부산 동래고, 부산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미국 캘리포니아대 국제대학원 석사, 중앙대 행정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취미는 독서와 등산이다. 부인 김현정 씨와 딸 셋을 두고 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