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서구권을 강타하고 있다. 유튜브 조회 1억건을 돌파한 것도 대단한 데다 한류의 진원지로 여겨지는 아시아권보다 북미와 유럽의 조회 수가 더 많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K팝의 리듬은 아주 원초적이다. 신체의 리듬과 비슷한 박자로 되풀이되는 주문에 사람들은 위로를 받게 된다. 인체와 비슷한, 낯익어서 좋은, 반복되는 것의 친숙성 속에서 사람들은 두려움에서 해방되고 위로받는다. 마치 어린 시절 배아플 때, 엄마가 ‘내손은 약손이다’란 단순 주문을 반복하면 위안을 느꼈던 것처럼.

2008년 부동산과 금융의 천재적인 결합으로 이뤄진 기상천외한 대출과 그 파생상품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 경제 글로벌리즘의 위력과 위험을 만천하에 증명했다. 한국에서 아무리 잘해도 다른 나라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은 세계가 공동으로 지게 돼 있다. 이제 사람들은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감성에 기대어 일시적으로 위로받고 지뢰밭같이 위험천만한 길을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K팝의 비밀은 여기에 있다. 미소녀, 소년들이 반복되는 리듬과 율동으로 세련되게 추는 춤을 보며 동양인들은 자신과 닮은 낯익은 모습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서구인도 팝의 비주류이며 동양인이라는 낯섦을 음악과 율동의 중독성으로 상쇄하며 흥미와 관심을 보내게 된다. 여기에 물론 미소녀, 소년들의 섹슈얼리티도 한몫한다. 이들이 일본 만화·게임의 주인공과 매우 닮아있다는 점은 K팝이 일본에서 시작해 서구로 진출한 경로를 짐작하게 한다. 이제 K팝은 어느 정도 인지도를 확보하며 기반을 다졌다.

‘강남스타일’은 이런 K팝의 지평을 한 단계 높였다고 할 수 있다. 눈 조그맣고 얼굴 넓적하며 몸매 뚱뚱한, 전형적인 한국 아저씨가 서구의 팝뮤직과 댄스를 열심히 비틀고 있다. 한국 할머니들의 관광버스 춤, 사우나 조폭들, 선캡 쓰고 파워워킹하는 아줌마, 배나온 강남 졸부라는 한국 스타일을 태연자약하게 보여주면서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서구 팝 음악을 오연히 다시 쓰고 있는 것이다. 그간 세계적인 인터넷 감수성이 된 엽기 패러디를 활용한 것도 훌륭한 전략이었다. ‘주류 기괴하게 만들어 비틀기’란 이 세계보편적인 감수성에 서구인들이 한방 먹은 것이다.

올림픽 개막식의 시작과 끝을 ‘007’과 비틀스 음악으로 장식해 자신이 본령임을 보여준 콧대높은 서구인들 앞에 당당하게 등장한 이 엽기 스토리텔링은 지금까지 자기 것을 곧잘 흉내내는 ‘섹시한’ 한국애들의 이미지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여기서 우리는 1987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씨받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양반집안에 자식을 낳아주러 온 ‘씨받이’라는 설정부터가 ‘짓밟힌 동양여성의 성성(性性) 느끼기’란 오리엔탈리즘의 극치다. 여주인공 강수연이 오지 않는 양반 연인을 기다리며 외로워하는 장면에서, 애절한 한국 전통음악이 흐르고 화사한 한복치마는 꽃잎처럼 360도 둥글게 원을 그린다. 그녀는 발레하듯 우아하게 허리를 굽힌다. 카메라의 시선은 영화 내내 가련한 동양여성의 모습을 아름답게 클로즈업한다. 남성중심, 양반중심 사회에서 억압받는 동양여성에 대한 도착적인 시선이란 비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한국 영화의 세계 진출 과정에서 보면 매우 지엽적인 판단이다. 1961년 ‘마부’가 베를린영화제에서 특별은곰상을 받은 후 한국 영화는 답보상태를 면치 못했으나 ‘씨받이’를 기점으로 한국성을 중심으로 한 영화들이 국제영화제에 잇따라 입상하기 시작한다. 더불어 ‘오아시스’ ‘사마리아’ ‘올드보이’ 등 인간의 보편성을 탐구하는 영화가 상을 받으며 한국영화를 발전시켰다.

‘소녀시대’류의 K팝이 주류 닮기의 대견함이었다면 ‘강남스타일’은 주류 비틀기의 참신함으로 진일보했다. 이제 K팝은 확보된 대중성을 바탕으로 서구 주류음악인 팝을 인류 보편성으로 풍부하게 할 단계에 이르렀다.

최혜실 < 경희대 교수·국어국문학 choi4626@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