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이스탄불 신시가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교차점…건물 대부분 프랑스·이탈리아풍

애거사 크리스티에 영감 준 도시
집필 몰두한 페라팰리스호텔은 헤밍웨이·마타하리도 '단골'

이스탄불의 명동 '이스틱클랄'…명품숍·미술관 맛집 가득
오리엔트 특급열차의 종착지, 리틀 유럽을 만나다

방에 들어서는 순간 검은색의 언더우드 타자기가 이방인의 시선을 자극한다. 짙은 밤색의 커튼이 드리워진 침실은 폐쇄적 성격의 소유자였던 주인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터키 이스탄불 신시가의 테페바시 지구에 위치한 페라팰리스호텔 411호는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가 자주 머물며 집필에 몰두했던 곳이다.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즐겼던 이 세기의 추리소설가는 1926년부터 1934년까지 오리엔트 특급열차에 몸을 싣고 이스탄불을 자주 드나들었다.

오리엔트 특급열차의 종착지, 리틀 유럽을 만나다

오랜 세월 동로마제국과 오스만 터키의 수도였던 만큼 이국적 풍취가 가득한 이 도시는 아마도 크리스티에게 영감의 원천이었던 듯하다. ‘쥐덫’과 함께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을 착상하게 된 것도 1934년 오리엔트 특급을 타고 이스탄불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였다고 한다. 그는 이스탄불에 내리자마자 페라팰리스호텔에 여장을 풀고 두문불출 이 작품을 집필했다.

이스탄불 신시가는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오리엔트 특급열차의 종착점이 있던 곳이다. 아랍세계로 여행하려는 서유럽인들이 이곳을 베이스캠프 삼아 며칠 묵은 뒤 페리를 타고 보스포루스해협을 건넜다. 자연히 기차 역 주변에는 이들을 상대로 영업하기 위해 호텔, 레스토랑을 비롯한 각종 위락시설이 들어섰다. 크리스티가 페라팰리스에 여장을 푼 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지금은 특급호텔이 적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뜨거운 물이 나오고 전기가 공급되는 호텔이 드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유럽의 왕족과 귀족은 물론 VIP고객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 작가 헤밍웨이, 스파이로 유명한 마타 하리, 프랑스의 해양소설가 피에르-로티가 이곳의 단골이었다.

오리엔트 특급열차의 종착지, 리틀 유럽을 만나다

유럽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어서 그런지 이곳에는 유럽 문화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건물은 대부분 프랑스 양식 아니면 이탈리아풍이다. 마치 유럽 어느 도시의 중심가에 와 있는 느낌이다. 오죽하면 ‘작은 유럽(little europe)’이라는 별명을 얻었을까. 아라비아양식의 건물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기 어렵다. 아야소피아성당, ‘블루모스크’로 더 잘 알려진 술탄 아흐메드 1세 자미(모스크의 터키식 호칭), 톱카프궁전 등 비잔틴과 아라비아풍의 건물로 가득한 남쪽의 구시가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특히 프랑스 문화가 끼친 영향은 유별나다. 이곳의 레스토랑(로칸타)은 야외테라스에 테이블을 차린 곳이 많은데 전형적인 프랑스 레스토랑을 연상시킨다. 접시 하나 올리면 꽉 찰 정도의 작은 테이블 크기라든가, 붉은 색 격자무늬의 테이블보, 그리고 무엇보다 요리와 함께 서비스되는 빵이 프랑스인이 즐겨 먹는 바게트 모양이 많다는 점 등 비슷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프랑스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오랜 전통이 남긴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오리엔트 특급열차의 종착지, 리틀 유럽을 만나다

신시가의 중심은 이스틱클랄 거리다. 이 널찍하고 화려한 길은 이스탄불의 명동이라 할 만큼 번화한 거리로 베이오울루지구의 중심부를 남북으로 관통한다. 약 1㎞에 이르는 거리 좌우에는 명품숍이 즐비하고, 스타벅스 같은 외국계 커피전문점들도 터키 젊은이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곳이 이스탄불 속의 유럽이라는 별칭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터키 토종 브랜드인 코톤(남성복), 데사(핸드백, 구두), 마비진스(청바지) 등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선방하고 있다. 오래된 식품점이나 잡화점도 눈에 띄는데 1777년 설립된 사탕가게 ‘하지 베키르’는 오늘도 손님으로 북적댄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젤리 타입의 전통과자 ‘로쿰’은 특히 인기가 높아 불티나게 팔린다.

이스틱클랄 거리에는 맛있는 먹거리도 푸짐하다. 1888년 개업한 ‘하즈 압둘라’는 오스만제국 시절의 궁정요리를 바탕으로 개발한 수백가지 요리를 서비스한다. 가격은 대략 3만원대부터 시작한다. 터키 전통요리와 퓨전요리를 함께 판매하는 ‘더 하우스’에서는 맵게 간을 한 고기경단에 삶은 가지를 곁들인 코프타를 맛볼 수 있다. 소금 간을 한 터키 전통 요구르트 음료 아이난도 한 잔 시켜 터키의 음식문화를 느껴 보는 것도 좋다.

이스틱클랄 거리 북단의 탁심지구는 미술관 거리로도 유명하다. 이 중 갤러리스트, 피 아트웍스, 네브는 기업이나 개인이 지원하는 비영리 화랑으로 서구와 터키 현대작가를 소개하는 새로운 예술 창조의 산실 역할을 하고 있다.

신시가의 명물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갈라타타워다. 제노바인의 집단 거주지 외벽에 건설된 67m 높이의 이 거대한 탑은 이스탄불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반드시 들러야 할 장소다. 8층까지 엘리베이터로 올라간 다음 계단을 오르면 저 멀리 보스포루스해협과 오른쪽으로 강처럼 길게 파인 골든 혼이 한눈에 들어온다. 골든 혼 건너편이 구시가인데 아야소피아와 블루모스크의 돔과 첨탑(미나렛)이 이국적 풍취를 자아낸다. 글쓰기에 지친 크리스티도 호텔에서 불과 300여m 떨어진 이곳에 들러 긴장을 풀었을지 모를 일이다.

밤의 갈라타타워는 이스탄불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은은한 조명에 감싸인 옛 오스만제국의 수도는 여행자에게 찬란했던 제국의 영화를 말 없이 전해준다. 갈라타타워에서는 매일 밤 벨리댄스 공연도 펼쳐진다.

크리스티가 타계한 지 3년이 지난 1979년 3월 유럽 언론에는 흥미로운 기사가 게재됐다. 할리우드의 유명한 심령술사 타마라 랜드가 세계 유수의 언론사 기자들을 페라팰리스호텔 크리스티룸으로 초청, 그곳에서 크리스티와의 접신을 시도했는데 그는 크리스티를 만나 그의 지시에 따라 호텔 문 오른쪽 모서리 바닥을 들어내 8㎝ 크기의 열쇠를 찾아냈다는 것이었다. 이 열쇠는 크리스티의 사라진 일기장을 보관한 상자의 열쇠라고 하는데 그 상자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랜드의 말이 사실이라면 크리스티의 영혼은 사후에도 계속 이스탄불을 떠돌고 있는 셈이다. 그만큼 이스탄불은 크리스티에게 각별한 장소였고 그녀 삶의 일부였음을 상기시키는 에피소드다. 다음 휴가 땐 크리스티의 궤적을 따라 이스탄불로의 모험을 감행하는 것은 어떨까.

이스탄불=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 여행팁

오리엔트 특급열차의 종착지, 리틀 유럽을 만나다

골든혼 위쪽 신시가지…터키의 어제와 오늘 엿볼수 있어

이스탄불은 최근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여행지다. 그러나 관광객의 발걸음은 대부분 비잔틴양식 건축물인 아야소피아와 블루 모스크가 자리한 구시가로 향하고 있다. 골든혼 위쪽의 신시가지야말로 터키의 근대와 오늘을 살필 수 있는 매력적인 관광지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곳에 가면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의 일원이 되고자 한 터키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다.

이스탄불의 관문인 아타튀르크공항은 구시가 서쪽,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짐이 가벼우면 공항에서 메트로를 타고 이동해도 좋고 짐이 많을 땐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게 좋다. 이스틱클랄 거리까지 30터키리라(약 2만1000원) 정도.

저렴한 숙박시설은 구시가 남쪽에 몰려 있다. 이곳에 숙소를 정하고 신시가를 도보로 오가는 것도 비용을 절약하는 방법이다. 이스탄불은 인구 1300만의 거대 도시지만 관광객의 관심 지역은 걸어서 다녀도 될 정도로 한정돼 있다. 트램을 타고 다녀도 좋다. 요금은 거리에 상관없이 1.5터키리라(약 1050원)로 우리 대중교통 요금과 비슷하다.

터키 음식은 대체로 짠 편이다. 싱거운 음식을 선호하는 사람은 해물이 첨가된 샐러드류를 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전통주인 라크는 희석주로 물을 타서 마신다. 아니스향이 첨가된 독주로 비위가 약한 사람에게는 적절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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