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총부대' 병의원 영업팀

병원 문 열때 의사에 눈도장 찍어…지역별로 하루 10~20여곳 방문
의사가 부르면 언제든 출동…주말 데이트 중에도 비상 대기
준종합병원선 약제부장도 챙겨
[제약 영업맨 '新 서바이벌 전쟁'] 운전기사에 베이비시터 역할까지…의사 마음만 얻을 수 있다면…

‘동네병원’을 상대로 영업하는 제약사 영업사원의 하루는 오전 8~9시, 첫 방문 대상 병·의원의 셔터문이 올라갈 때 시작된다. 계속 얼굴을 내밀다 보면 처음엔 귀찮아하던 의사들도 마음을 조금씩 열게 마련.

제약사들은 동선이 연결되는 지역을 적절히 묶어 팀별로 배분하고, 지역별 병·의원 개수를 파악한 뒤 이를 팀원 수로 나눠 1인당 할당량을 정해준다. 매출 상위 20대 제약사들의 경우 보통 영업사원 1명이 30~40개 병·의원을 맡는다. 병·의원 한 곳당 월 평균 100만원 정도를 처방받아야 월 표준 실적(통상 3000만~5000만원)을 달성할 수 있다.

영업사원들은 방문 횟수를 ‘콜’이라고 부른다. 하루 최소 10콜, 많게는 20콜 정도를 뛰어야 한다. 보통 한 팀에서 하위 20~30%는 월 표준 실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실적에 따른 연봉 격차는 제약사마다 천차만별이다. 적게는 차이가 1000만원 이하인 경우도 있지만 수천만원까지 벌어지는 제약사도 있다. 특히 할당받은 병원들 가운데 처방량이 많은 상위 10~20% 소수 병원을 수성(守城)하는 게 관건이다.

제대로 된 ‘간택영업’을 하려면 주말에도 비상대기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영업사원 A씨는 토요일 데이트 도중 갑자기 한 의사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집으로 달려갔다. 컴퓨터가 고장났으니 고쳐달라는 것. A씨는 “기회가 올 때 놓쳐버리면 그걸로 끝이기 때문에 항상 ‘출동’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커피믹스, 잉크토너, A4용지 등 소모품 조달도 곧잘 떠맡는다. 소모품 조달은 시간싸움이라 자칫 늦었다가는 타 회사에게 밀리기 십상. 결국 가장 빠르게 갖다주는 영업사원이 간택받는다.

영업사원 B씨는 모 병원을 매일 방문, 모든 층의 에어컨을 점검해 필터를 바꿔주는가 하면 복도 청소 등도 대신 해줬다. 그리고는 간호사에게 “왔다 갔다는 사실만 원장에게 전해달라”고 말한 뒤 사라지길 반복했다. 처음엔 “시키지도 않은 일을 왜 하느냐”며 부정적이던 병원장은 나중에 결국 B씨의 약을 채택했다.

간택영업을 통해 납품을 간신히 성사시켜도 이를 확장,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이비인후과 등 항생제를 많이 쓰는 경우 병·의원 한 곳에서 월 처방액이 500만~700만원까지 나올 수도 있다. 다만 눈 밖에 나면 처방액이 ‘0원’으로 줄어드는 건 시간문제다. 똑같은 약효의 같은 제네릭(복제약)이 널렸는데, 의사들이 감정이 상한 제약사와 굳이 거래관계를 유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 준종합병원의 경우에는 병원장 등 의사뿐 아니라 약제부장 간호부장 등의 마음도 사로잡아야 한다. 영업사원 C씨는 “세미 병원의 경우 간호부장 등이 병원장의 아내인 경우가 많고 이들이 제약사 선택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며 “이들 역시 VIP로 관리한다”고 귀띔했다.

백신과 수액 공급도 꽤 중요하다. 서울 지역에서 월 매출 2000만~3000만원(하루 환자 수 50~100명)을 올리면서 흑자를 내는 병원 한 곳만 뚫어도 바이러스 유행기에 백신 1000개가량을 납품할 수 있다. 수액도 원가는 싸지만 기초수액 외에 건강보험 비급여 영양제 등의 경우 10만원 안팎으로 의원에서 팔 수 있다.

영업사원 D씨는 “현금을 건네면 정색하거나 술자리 자체를 꺼리기도 하고, 골프를 쳐도 각자 비용을 내는 등 이전과는 의사들의 태도가 확실히 달라진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접근하기 더 어려워진 의사들의 감성을 파고드는 간택 영업이 갈수록 빛을 발하는 시대가 됐다는 설명이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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