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항공사들이 극동 러시아 하늘길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에 나섰다. 러시아를 찾는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양국 정부가 한국과 블라디보스토크 간 항공자유화에 합의하면서 무제한 운항이 가능해져서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비행시간이 3시간 이내여서 대형 항공사와 저비용 항공사 간 경쟁도 치열할 전망이다.

◆블라디보스토크 하늘길 ‘활짝’

19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다음달 1일부터 인천~블라디보스토크 노선에 B777-200ER 중대형 기종을 투입한다. 248석 규모의 항공기로 지금까지 운항해온 159석 규모 B737-900ER 항공기보다 100여석이 늘어나는 셈이다. 현재 주 7회인 운항 횟수를 주 14회로 증편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도 지난 5월 이뤄진 양국 간 항공자유화에 맞춰 극동 하늘길에 진출한다. 오는 11월16일부터 인천~블라디보스토크 노선을 주 7회 일정으로 신규 취항할 예정. 이에 따라 현재 주 3회 운항 중인 사할린·하바로프스크와 함께 국내 항공사 가운데 극동 러시아 지역에 최다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저비용 항공사들도 블라디보스토크 하늘길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일본과 동남아 등 경쟁이 과열된 기존 노선에서 벗어나 북방지역으로 신규 노선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여서다. 진에어,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등이 국토해양부에 인천~블라디보스토크 노선 취항 의사를 전하고 관련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과 블라디보스토크 노선은 그동안 양국에서 각각 1개 항공사만 제한된 범위에서 운항해왔다. 국내에서는 대한항공이 주 7회, 러시아에서는 블라디보스토크항공이 주 3회 운항하고 있다.

◆연해주 최대 항구도시…외교·경제 요충지

인구 58만명의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 연해주(沿海州)지방에 있는 도시로 동해 연안의 최대 항구도시이자 군항이다. 1890년대부터 무역항으로 크게 발전했고, 1903년 시베리아철도가 개통되면서 모스크바와 연결됐다. 1917년까지 미국 중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이 이곳에 영사관을 개설해 ‘극동의 상트페테르부르크’라고 불렸다.

최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극동발전전략 2025’를 발표하면서 러시아의 극동 중시 전략과 맞물려 동북아의 외교·경제 요충지로 부상하고 있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대한항공을 이용해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한 승객은 5만1164명으로 전년보다 26% 늘어나는 등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러시아 동북방의 외교·경제 요충지로 부상하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좌석 공급을 늘리기로 했다”며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러시아의 다른 도시를 방문하거나 제3국에서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하는 승객을 비롯한 신규 여객 수요 창출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행상품 늘어날듯

블라디보스토크는 1860년 러시아 정부가 군항으로 건설한 도시지만 볼거리도 적지 않다. 금각만과 추코트 반도가 한눈에 보이는 높이 120m의 전망대, 9288㎞에 이르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시발역인 블라디보스토크역, 태평양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잠수함박물관, 별관에 한국실을 별도로 갖춘 연해주 주립 아르세니예프박물관, 해양시민공원과 인접한 수산시장과 재래시장, 연해주 일대 한인들의 독립운동을 기리는 신한촌기념비 등이 있다. 러·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때 사용한 포대와 군사장비를 보여주는 요새박물관에선 매일 정오를 알리는 포를 발사한다. 아시아에서 유럽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아직 블라디보스토크와 연해주 여행상품은 많지 않다. 하나투어 모두투어 등 큰 여행사들도 크루즈상품만 판매하고 있는 실정. 이들 여행사는 ‘DBS크루즈페리’를 이용한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 5일’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조일상 하나투어 홍보팀 대리는 “지금까지는 블라디보스토크와 연해주 지역을 찾는 여행객이 많지 않아 선박 여행이 대세였지만 향후 항공편이 늘어나 새로운 수요가 생기면 항공 패키지 상품도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정/서화동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