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영웅'의 눈물만 닦지마라
얼마 전 또 한 명의 ‘영웅’이 우리 곁을 조용히 떠났다. 화재진압을 끝낸 뒤 과로로 순직한 김동환 소방장(45)이다. 1993년 부산시 소방본부에 입사한 고인은 그동안 1650여명의 인명을 구조해 ‘119 영웅’으로 칭송받았다. 김 소방장처럼 소방관들은 목숨을 걸고 인명 구조에 나서지만 보상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한 달 평균 30여번 출동해 받는 생명수당(위험수당+화재진압수당)은 고작 월 13만원. 화재 출동 1건당 목숨수당이 4300원에 불과한 셈이다.

인원 부족으로 절반 이상의 소방관이 ‘맞교대(2교대)’ 근무로 버티지만 임금을 제때 못 받는 경우도 있다. 현재 전·현직 소방관 1만1000여명은 각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초과근무수당을 달라는 소송을 진행 중이다.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지자체들이 2007~2009년분 수당 2822억원을 주지 않아서다.

한 번 출동 목숨수당 4300원

소방관의 안전과 직결되는 장비문제도 심각하다. 방화복과 공기호흡기, 장갑 등 기본적인 장비가 부족한데다 그나마 있는 것도 상당수 내구연한이 지났다. 대구시의 경우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공기호흡기는 31.6% 부족하고, 구비된 것마저도 42.8%가 폐기 시점을 지났다. 안전화(58.2%), 장갑(48.2%) 등도 절반 정도가 노후화됐다.

현실과 동떨어진 의료지원체제는 소방관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현장에서 입은 부상은 무료로 치료를 받지만 나머지 부상은 ‘증명’이 어려워 자비로 치료한다. 30㎏에 이르는 산소통을 메고 부상자를 나르다 보니 소방관들은 허리디스크 등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지만 ‘업무상 부상’을 입증하기 어렵다. 소방방재청이 최근 소방관 3만여명을 대상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여부를 조사한 결과 5% 선인 1452명이 정밀진단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국가적인 지원책은 거의 없다. 소방관의 39.7%가 우울증 경험이 있고, 최근 4년간 자살한 소방관도 26명에 이른다.

치료비를 충당하기 위해 보험에 가입하려 해도 쉽지 않다. 보험을 들더라도 혜택의 제한이 많거나 보험료가 비싼 경우가 허다하다. “하루에도 몇 번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어느 보험사가 쉽게 받아주겠느냐”는 소방관들의 자조 섞인 체념만 들린다.

소방관 평균 수명은 58.8세

열악한 환경 탓에 소방관의 평균 수명은 58.8세(2010년 공무원연금공단 자료)에 불과하다. 한국인 남성평균인 77.2세보다 18.4세나 짧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소방관 임관 5년 내 이직률이 20%에 이른다. 처우개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국가공무원인 경찰관과 달리 소방관은 지방공무원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지자체가 재정난을 겪고 있어 가용자원이 부족한데다 복지 등에 밀려 소방분야는 늘 뒷전이다. 게다가 국비 지원도 거의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국비지원율은 67.7%인 데 반해 우리 정부의 소방예산지원율은 달랑 2%대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여야는 각종 복지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소방관을 위한 복지는 그 어디에도 없다. 정치권은 소방관이 순직할 때마다 눈물을 닦아준답시고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 개선책을 내놓지만 수당 1만~2만원 인상 등 ‘반짝대책’에 그친다.

“소방관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국가공무원으로 격상시키고 ‘소방특별회계’ 등을 만들어 예산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소수현 경일대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전문가들의 주장에 이제는 진지하게 귀를 기울일 때다.

김태철 지식사회부 차장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