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은행 강화 '말로만'…업종 다각화·M&A도 부진
“증권과 카드 보험 등 비은행 부문을 강화하고 해외 진출을 추진하겠다.”(이팔성 우리금융 회장, 2011년 12월) “2013년까지 비은행 수익 비중이 30%에 이르게 하겠다.”(어윤대 KB금융 회장, 2011년 1월)

금융지주사 회장들은 해마다 신년 메시지로 증권·카드·보험 등 비은행 부문 비중을 높이겠다고 강조해 왔다. 방법론으로 인수·합병(M&A)에 대한 강력한 의지도 천명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반대로 은행 비중이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이 시장을 상대로 한 약속이 허언이 된 셈이다.

◆은행 중심의 수익 구조 고착화

올 상반기 국내 금융지주사들의 실적을 보면 여전히 은행만 바라보고 사는 취약한 수익구조가 그대로 드러난다. 지주사 순이익 중 은행의 비중이 90% 안팎에 이른다. 다른 계열사들은 아직도 ‘은행의 들러리’ 정도로 취급되는 경우가 흔하다.

문제가 간단치 않은 것은 최근 이런 경향이 더 강해졌다는 점이다. 증권 카드 등 경기가 좋아져야 이익이 나는 비은행 계열사들의 순이익이 크게 줄었다. 물론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 영향이 크다. 최정욱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초유의 금융위기로 영업 환경이 악화된 데다 투자은행 등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진 점도 비은행 부문의 성장을 가로막았다”고 진단했다. 은행의 자기자본비율 등에 대한 글로벌 규제가 강화된 것도 비은행 부문의 투자 여력을 갉아먹는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지주사들은 높은 은행 비중을 끌어내리려고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여러 차례 M&A나 합작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대개 실패하거나 큰 소득이 없었다. 전병윤 우리금융 전무는 “보험을 키우기 위해 아비바그룹과 합작했고, 글로벌 운용사인 크레디트스위스(CS)그룹과 합작하기도 했지만 금융위기의 여파로 두 곳과 모두 결별 위기”라며 금융지주사로의 도약이 만만치 않은 과제임을 토로했다.

◆보수적 결정 문화 극복해야

하나금융 관계자는 “지난 10년간 기억할 만한 비은행 M&A는 LG카드를 신한금융이 가져간 것 하나뿐”이라고 말한다. 해법은 금융지주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회사 고위 임원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은행문화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립적인 지배구조를 갖추는 것도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금융지주사 CEO들의 위치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리스크를 감수하고 정부와 주주 등을 설득해 큰 거래를 성사시키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역할론도 제기되고 있다. M&A를 통해 ‘선두회사’ 출현을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정치권의 무리한 요구와 금융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M&A를 지원하는 등 금융당국의 냉정한 정책적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시장자율성 제고도 필요하다. 우리금융은 은행에서 카드 부문을 분사하겠다고 지난해 이사회에서 결의까지 마쳤지만 금융감독 당국에서 “경쟁이 치열해져 카드 시장이 혼탁해질 수 있으니 기다리라”고 하는 통에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우리금융과 산업은행을 매개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종수 금융투자협회장은 “우리금융을 분리매각하거나 산은금융 민영화 과정에서 큰 투자은행이 나오도록 하면 다른 곳에서도 덩치 키우기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