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구구식 선택진료비 표준화 시급"
보험사들이 실손보험의 갱신 보험료 인상에 나선 가장 큰 이유는 손해율이 높아져서다. 보험사들은 전년 손해율에 따라 1년간의 갱신계약 보험료를 조정하는데, 작년 말 기준 손해율이 114.3%였다. 지금 상태로선 이 상품을 운용할수록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다면 실손보험 손해율이 왜 이렇게 높아졌을까. 보험사들이 언더라이팅(가입심사)을 엄격하게 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가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란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병원마다 제각각인 선택진료비

환자들이 실제 납부하는 비급여 진료비 중 가장 비중이 높은 항목은 선택진료비(2008년 기준 26%)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선택진료비는 500병상 이상을 갖춘 전국 86개 대형 병원을 기준으로 2009년 9960억원으로 집계됐다. 2008년부터 2년간의 연평균 증가율이 11.87%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올해 1조4000억원, 2015년엔 2조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다.

병·의원들이 비급여 진료비를 임의로 결정하는 방식도 문제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수면내시경 검사 진료비만 해도 3만5000~19만6100원으로, 의료기관에 따라 최고 5.6배 차이가 났다. 한 손보사의 보상담당자는 “보험금 청구 신청이 들어왔을 때 이게 비급여 항목인지 장례식 비용인지조차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병·의원들이 주먹구구식으로 책정한 비급여 진료비를 표준화하고 통계를 구축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병원들이 과잉 진료를 해도 차단할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은상준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비급여 항목의 경우 병원마다 치료 이름이 제각각”이라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이 비급여 진료비가 적정한지 심사하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3자 의료비 청구제 도입해야

보험업계와 학계, 소비자단체 등은 현행 의료비 상환제를 제3자 청구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환제는 보험 계약자가 병·의원에 진료비를 납부한 뒤 보험사에서 사후정산을 받는 방식이다. 계약자가 진료비 납부증명서 등을 떼 보험사에 제출하고, 보험사는 청구액을 그대로 지급하는 형태다.

제3자 청구제의 경우 보험 가입자가 병·의원에 진료비를 별도로 납부할 필요가 없는 제도다. 의료기관이 전산망을 통해 곧바로 보험사에 청구할 수 있어서다. 이 과정에서 비급여 진료비가 적정한지 여부를 심평원이나 보험사가 심사할 수 있다. 조용운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제3자 의료비 청구제의 경우 소비자 입장에서 단점이 거의 없고 각종 행정 낭비까지 줄일 수 있다”며 “자율성 침해를 우려하는 의료계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정책당국도 이런 제도 도입에 긍정적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보험정책과장은 “비급여 진료비의 표준화와 투명화는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라며 “다만 이달 초 포괄수가제 도입 때처럼 의료계의 집단 반발이 예상되는 상황이어서 강제 시행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윤수 금융위원회 보험과장은 “금융소비자의 권익증진을 위해서는 다소 세다 싶을 정도의 의료개혁 방안을 놓고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 비급여 진료비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치료비. 환자나 보험사가 직접 부담해야 한다. 교수급 의사에게 진료받을 때 내는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 차액, 초음파 검사 등이 대표적이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