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의 절반 이상인 2600만여명이 가입한 실손의료보험. 올 들어 보험료가 한꺼번에 40~50% 올랐다는 소비자 민원이 쏟아지자 금융당국과 보험업계, 학계가 한 자리에 모여 대안을 모색했다.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소비자 중심의 민영 의료보험 개선 방안’ 세미나를 통해서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비급여 진료비(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치료비)를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자”거나 “의료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을 위해 별도의 실손상품을 만들자”는 제안을 내놨다.

◆노인 치료비 보장보험 출시 시급

조용운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민영 의료보험의 발전 방향’이란 내용의 주제발표를 통해 “생애 의료비 중 65세 이후가 차지하는 비중이 65%에 달하는데도 고령자의 실손보험 가입률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고정 소득이 있는 젊은 시기에 적립했다가 노후에 의료비로 쓸 수 있는 노인 의료비 보장보험 출시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현행 실손보험의 경우 나이가 들거나 갱신할 때마다 보험료가 크게 오르는 구조여서 은퇴자 등은 계속 유지하기 어렵다.

이에 반해 노인 의료비 보장보험은 젊을 때 장기 저축성 상품처럼 매달 일정액을 떼었다가 65세 이후 치료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방식이다. 100만원, 200만원 등 연간 한도를 둬 이 한도 내에서만 의료비를 인출할 수 있다. 치료비가 이 한도를 넘으면 보험사에서 보험금으로 내준다. 공제 한도까지 자신의 저축액에서 차감하는 방식이어서 ‘의료 쇼핑’ 욕구를 억제할 수 있다. 40세 때 이 상품에 가입해 20년간 납입(적립액 3000만원)하고 65세부터 보장받을 경우 월 보험료는 현재 기준 7만2000원 선이라는 게 보험연구원 측 추정이다.

김정동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비용 문제로 치료를 포기하는 노인이 많다는 점에서 꼭 필요한 상품”이라고 평가했다. 한 손보사 관계자는 “당국 승인을 얻으면 이른 시간 안에 첫 상품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15년을 초과한 금융상품을 내놓을 수 없도록 한 행정 규제가 먼저 철폐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인 실손보험 가입 1%뿐…전용상품 시급"

◆“저가 상품 유도” vs “실효 적다”

보험사들이 저가형 실손보험 상품을 내놓도록 유도하겠다는 당국 방침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하지만 비급여 진료비를 통제해 보험금 누수를 막아야 한다는 데는 대부분 공감했다.

김대환 보험연구원 고령화연구실장은 “보험사들이 과도한 영업 경쟁으로 초기 보험료를 낮게 설정한 문제는 분명히 있다”면서도 “갱신 보험료 인상의 가장 큰 원인이 주먹구구식 비급여 항목 때문인데 의료계 반발을 의식해 통계조차 못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윤수 금융위원회 보험과장은 “보험사 손해율이 높아졌다고 손쉽게 보험료 인상으로 메우는 것은 맞지 않다”며 “실손보험을 특약 형태로 파는 현재 방식이 맞는지, 또 보험 갈아타기를 쉽게 만들 수는 없는지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당국은 장기 손해보험의 ‘실손 특약’을 떼어 저가형 단독 상품으로 유도하고, 보험료 갱신 주기를 종전 3년에서 1년으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보험업계는 저가형 실손보험 출시에 대해 부정적이다. 박종화 손보협회 이사는 “실손 단독 상품의 경우 높은 손해율 때문에 보험료가 더 많이 오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성태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설계사들이 수당이 적은 저가형 상품 판매에 미온적일 것”이라며 실효성에 의문을 나타냈다.

■ 실손(實損)보험

병·의원에서 치료받은 후 개인이 실제 부담한 의료비를 보장해주는 민영 건강보험 상품이다. 대개 3년마다 연령 증가와 병원 이용 정도 등을 감안, 보험료를 인상한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