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 긴급진단] 삼성석화 울산2공장 가동 중단…르노삼성은 주 1회 휴무
한 종합상사 화학팀은 이달 초부터 유럽 수출 고객과 현지 바이어 ‘선별작업’을 하고 있다. 유럽 경제위기가 심화하면서 계약 불이행 건수가 크게 늘어나고 있어서다.

일부 화학제품은 한 달 새 유럽 수출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 분야와 철강제품의 사정도 좋지 않다. 태양광 모듈 등을 수출하는 7~8개 국내 업체 가운데 한두 곳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문을 닫기 직전인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 역시 유럽 내에서 장기계약을 제외한 스폿성 판매는 완전히 끊어졌다. 종합상사 관계자는 “유럽 위기가 중국이나 미국으로 옮겨 붙으면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 재앙 수준의 충격이 올 수 있다는 게 현장 전문가들의 판단”이라고 했다.

○철강·화학·조선 불황 ‘한복판’

주력 수출 산업 중 화학과 철강, 조선은 이미 불황에 빠져들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수출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2분기 실적 발표가 두렵다”고 털어놨다.

삼성석유화학 울산 2공장은 가동을 중단한 지 2주가 넘었다. 폴리에스터 섬유의 원료인 PTA(고순도 테레프탈산)를 생산하는 울산 2공장은 지난 8일 정기 보수에 들어갔다. 정기 보수 기간은 당초 2주였는데 한 달간 가동을 멈추기로 했다. 올 3월 말부터 4월 말까지 정기 보수를 위해 서산공장 가동을 중단했다가 재가동한 지 한 달여 만이다. 3월 말 t당 1160달러를 웃돌던 PTA 가격은 6월 셋째주 기준 890달러로 20% 이상 떨어졌다. 이 회사 관계자는 “다음달 재가동해도 다른 공장을 멈추든지 생산량을 줄일 계획”이라며 “7월 감산폭은 더 커질 것 같다”고 전했다. 삼성석유화학은 국내에서 가장 큰 연간 200만t의 PTA 생산 설비를 갖추고 있다. 화섬 원료 거래는 중국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유럽 경제위기로 의류 소비가 줄어든 데다 중국의 증설 프로젝트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가격이 회복세로 돌아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철강업계는 조선, 건설 등 수요 산업의 침체가 장기화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동국제강은 10일 포항 1후판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미주제강, 함양제강 등 중소형 철강업체들은 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잇따라 부도 처리됐다.

경남 통영에 있는 중형 조선사인 삼호조선은 법정관리 폐지로 청산이 결정됐다. 일부 해외 조선소들은 중국보다 더 낮은 선가를 제시하는 저가 수주도 마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해운선사들은 올 들어 한 척의 선박도 발주하지 못했다.

○판매·수주 감소…눈물의 세일

기계업체들은 세계 건설중장비 수요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발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지난달 중국 굴삭기 판매는 858대로 전년에 비해 18.3% 감소했다. 4월에는 1227대로 전년 대비 55.8% 줄기도 했다. 현대중공업은 중국 중장비 공장 가동을 3분의 1 정도 줄인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경기에 민감한 공작기계 쪽 상황도 좋지 않다. 한국공작기계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공작기계 수주는 3497억원으로 전월 대비 5.8% 증가했으나 전년 동월 대비로는 16.8% 줄었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8개월 연속 감소세다. 국내 수주는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39% 줄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국내 시장에서 에어컨 판매에 비상이 걸렸다. 올해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10%가량 줄었다. 삼성전자는 국내 판매가 끝나는 8월 중순을 한 달 반 정도 남겨놓고 ‘40만원 할인’ 카드를 던졌다. 최대 24개월까지 무이자 할부 조건도 제시했다. LG전자는 에어컨을 사면 최대 20만원 캐시백과 12개월 무이자를 적용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도 ‘노란불’

르노삼성자동차는 야심작 대형 세단 SM7의 실패와 SM3, SM5 등 다른 차종의 판매 부진으로 긴축 경영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올 들어 잔업이나 주말 특근을 하지 않고 있다. 시간당 생산대수를 나타내는 UPH는 종전 60에서 지난 4월부터 50으로 낮췄다. 한 주에 하루씩 생산라인을 가동하지 않는 ‘비가동일’도 운영하고 있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UPH와 워킹타임 두 가지 방법으로도 공장 유지가 어려울 경우 생산조직에 손을 대야 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쌍용자동차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 총 3개 라인 중 새로 내놓은 렉스턴W를 생산하는 조립 3라인 외에는 8시간 근무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수출로 위기를 돌파하고 있는 현대·기아차와 한국GM도 유럽 경제위기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GM 관계자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유럽 쪽 수출물량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내수 부진을 수출로 보완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 판매량은 오히려 늘었다”면서도 “아직은 큰 문제가 없지만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유정/최진석/서욱진/김대훈/김현석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