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서울 올림픽공원에 색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영국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BBC심포니가 잔디마당에서 스메타나 오페라 ‘팔려간 신부’를 연주했다. 관람객들은 아이를 안고 잔디밭에 앉아 있거나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도시락과 음료수를 먹는 사람도 많았다. 다른 클래식 콘서트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현대카드·캐피탈이 국내 처음으로 진행한 ‘파크 콘서트’ 형식의 공연이었다.

이런 색다른 콘서트가 기획된 배경에는 현대카드의 ‘고정관념 뛰어넘기’가 있었다. 이전까지 신용카드는 현금 대신 쓰는 결제수단 정도로만 여겨졌다. 현대카드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신용카드는 현대인의 분신에 가깝다. 현대카드는 신용카드에 결제기능 이외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기로 했다. 소비자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소비생활을 제안했다. 현대카드는 그렇게 어떤 회사도 하지 않았던 이벤트로 소비자에게 다가갔다.

2001년 뒤늦게 카드시장에 뛰어든 현대카드는 시장점유율 1.7%의 꼴찌였다. 차별화된 광고전략, 디자인, 마케팅으로 10여년 만에 15.6%의 시장을 차지하며 업계 2위로 도약했다. 한국 기업들에 ‘혼창통(魂創通)’이란 화두를 던졌던 이지훈 씨는 《현대카드 이야기》를 통해 이 회사를 심층 분석했다. 이 회사를 2년 동안 밀착 취재하고 정태영 사장과 10여 차례 인터뷰했다. 이를 통해 현대카드가 어떻게 한국적 상식을 깨고 새로운 조직문화를 심으며 혁신적인 비즈니스를 전개했는지 풀어낸다.

현대카드의 성공은 후발주자가 살아남는 방법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현대카드는 선발주자가 독식하는 전장에 뛰어들지 않았다. 선발주자가 만든 게임의 룰에 휘말리지 않고 새로운 룰을 만들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금융회사가 아닌 일종의 마케팅 회사로 정의했다.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트렌드 세터로 포장해나갔다. 뉴욕현대미술관에서 한국 디자이너 특별전을 열고, 여행 가이드북도 냈다. 전용서체를 개발하기도 했다. 슈퍼콘서트, 슈퍼매치, 슈퍼토크 등의 대형 문화마케팅도 선보였다. 또 스티비 원더, 레이디 가가, 에미넘 등 해외 스타의 내한공연을 유치했다. 마리야 샤라포바와 비너스 윌리엄스의 테니스 대결도 성사시켰다.

카드회사가 왜 이런 이벤트에 집착할까. 정 사장은 “현대카드가 신기한 일을 한다는 이미지를 심기 위한 것”이라며 “이벤트는 새로운 매체”라고 말한다. 그는 현대카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광고만큼이나 PR(public relations)에 집중했다. 그는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저 그런 이벤트가 아니라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만 했다.

현대카드는 많은 ‘최초’를 만들어냈다. 연회비 200만원짜리 신용카드로 VVIP시장을 선점했다. 플라스틱이 아닌 금속의 일종인 티타늄으로 카드를 만들었다. 카드 모서리에 색도 넣고 미니 카드도 내놨다. 카드 디자인을 고객이 직접 고를 수 있게도 했다.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압박을 받는 조직문화가 이런 상품을 만들어냈던 것. 조직원들은 뭔가 일을 하려면 “우리가 처음 하는 것 맞아?”라고 반문했다. 경쟁사가 뭘 하면 “그 회사가 처음 하는 거야?” 하고 묻는 것이 일상화됐다.

저자는 ‘모든 사람을 위한 상품이 가장 나쁘다’ ‘완벽은 발전의 적이다’ ‘혼혈이 순혈보다 강하다’ 등의 원칙이 현대카드 문화에 녹아 있다고 설명한다. 이런 현대카드의 방법이 혁신의 롤 모델로서 많은 시사점을 준다는 것이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