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배임 혐의로 8일 구속 수감된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56·사진)은 저축은행 소유의 고가 그림을 자기 것처럼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이 그림들을 하나금융 계열사인 하나캐피탈에 담보로 맡기고 유상증자 하는 데 활용했다. 하나캐피탈은 그림의 원래 소유주였던 서미갤러리와 법정 공방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130억원짜리 그림 횡령

하나캐피탈은 작년 9월 미래저축은행에 145억원을 유상증자해 주면서 ‘조건’을 걸었다. 12월 말 기준으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8%에 미치지 못하면 담보로 잡은 그림 5점 등을 처분하겠다고 했다. 김종준 하나은행장(당시 하나캐피탈 사장)은 “그림 5점은 분명히 김찬경 회장의 개인 소유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5점 중 2점은 서울옥션을 통해 지난 3월 매각했다. 팔린 그림은 고(故) 박수근 화백의 ‘두 여인과 아이(6억2000만원)’, ‘노상의 여인들(5억원)’이었다. 남은 그림은 박 화백의 ‘노상의 사람들’, 고 김환기 화백의 ‘무제’, 미국 유명작가 사이 톰블리의 ‘볼세나(무제라는 뜻)’ 3점이다. 담보가액을 130억~150억원으로 평가받은 볼세나는 10일 미국 뉴욕 필립스드퓌리사에서 경매에 들어갈 예정이다.

◆서미갤러리와 법정 공방 예상

이 그림들의 출처는 서미갤러리다. 오리온그룹의 비자금을 세탁해준 혐의를 받고 있는 곳이다.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는 삼성·한솔가 등에 수백억대 그림을 공급해준 것으로 유명한데, 작년 비자금 세탁 혐의로 기소돼 집행유예를 받았다. 서미갤러리는 이 그림들을 담보로 미래저축은행에서 285억원을 빌린 뒤 갚지 못했다. 정상적이라면 이 그림은 미래저축은행 소유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김 회장은 이 그림들을 “내 소유”라며 하나캐피탈에 담보로 제공했다. 쉽게 말해 저축은행 소유 작품을 자기가 담보로 활용한 것이므로 ‘횡령’에 해당한다. 서미갤러리 관계자는 “그림을 담보로 미래저축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았는데 김 회장은 이를 다시 제3자인 하나금융에 담보로 제공하고 유상증자에 활용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하나캐피탈은 이미 법적 검토를 마친 것으로 하나캐피탈 소유가 확실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하나캐피탈 관계자는 “유상증자 당시 김 회장과 미래저축은행 양쪽에서 그림이 김 회장의 개인 소유라는 문서에 서명했다”며 “서미갤러리와도 최근 그림 3점의 위탁판매 계약을 체결하며 홍 대표 등으로부터 ‘김 회장 소유가 맞다’는 서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검찰은 톰블리의 작품 등 그림 5점에 대한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는지, 담보 제공 및 자금 거래 과정에 불법행위는 없었는지 등을 중점 수사하겠다는 방침이다.

◆감독 당국에 밀항 전 구명운동

김 회장이 중국 밀항 시도 하루 전인 지난 2일 금융감독원을 방문해 저축은행 담당 관련자들을 상대로 ‘막판 구명 운동’을 시도하려다 불발에 그친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김 회장이 중국으로 도망가려 한 바로 전날 50대 여인 A씨 등과 금감원에 나타나 저축은행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국장급 인사들을 만난 것으로 안다”며 “그는 금감원 직원들에게 이 여성을 소개하며 ‘미래저축은행에 500억원을 투자할 사람이다.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 자리에서 “내가 금감원 윗분들과 친하다. 잠깐 만나 얘기하면 된다”고 떼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날 소환 조사한 미래저축은행 임직원들을 통해 이 같은 진술을 확보하고 김 회장과 동행한 여성이 단순 거액 투자자인지, 김 회장과 특수 관계에 있는 인물인지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김 회장과 고문, 감사 3명을 직원들과 함께 3~4분가량 만났지만 여성이 동행했는지 여부는 모른다”고 말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김 회장은 당시 금감원 국장들에게 “충남 아산의 아름다운CC를 담보로 500억원을 증자할 것이며, 충남 천안의 1600억원짜리 땅을 저축은행에 증여하겠다”며 이 같은 자구계획을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김경갑/이상은/장성호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