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이었다.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퀄컴 본사를 취재차 방문했다. 산제이 자 최고운영책임자(COO) 등을 만나 휴대폰 칩셋과 4세대 이동통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퀄컴이 클럭스피드(연산속도) 1기가헤르츠(㎓)에 달하는 ‘스냅드래곤’(코드명)이라는 모바일 프로세서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당시 웬만한 노트북PC(800㎒)나 데스크톱(1.4㎓)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노트북과 맞먹는 휴대폰 나온다’(한경 2007년 8월24일자 A16면 톱)는 기사를 보도했다.

다음날 아침 깜짝 놀랐다. 네이버에 실린 이 기사에 수천개의 댓글이 달렸다. “기대된다”는 반응부터 “기자가 무식하다. 어느 학교 나왔냐”는 비방까지 리플이 쌓였다. 나중에는 네티즌들끼리 ‘(기사가) 맞다’ ‘틀리다’ 공방이 벌어졌다. 간간이 인신공격성 악플이 보였지만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5년이 지난 지금 스냅드래곤과 그 후속모델은 삼성전자 갤럭시S, LG전자 옵티머스, HTC 원 등 주요 스마트폰의 핵심 부품으로 쓰이고 있다.

개방·참여로 위장한 독단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콘텐츠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노트북과 맞먹는 휴대폰’은 당시 정보기술(IT)을 일상생활이나 비즈니스에 활용하는 직장인들에게 큰 관심사였다. 엔지니어로선 끊임없는 기술개발의 과제다. 시각이 다르고 그에 따라 평가와 인식, 표현방식도 천차만별이다. 그런 생각들은 ‘개방과 참여’를 모토로 하는 인터넷 공간에서 ‘사상의 자유시장’이라는 담론의 장(場)을 형성한다. 기업이 자유롭게 경쟁하며 상품을 내놓아 가격으로 평가받는 시장경제 시스템처럼….

세계적으로 휘몰아치는 변화의 동력에는 인터넷,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SNS를 기반으로 소셜 커머스, 소셜 리크루팅, 소셜 펀딩에 소셜 영화까지 등장하는 ‘소셜 소싱(social sourcing: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집단협업) 시대’다. 그러나 여기엔 역설적인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개방과 참여라는 가면을 쓴 독단과 폐쇄가 춤출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저질 발언과 그릇된 정보, 왜곡, 편향들이 ‘콘텐츠’라는 껍데기로 포장돼 있다.

막말·거짓정보 걸러내야

인터넷 라디오 방송 ‘나는 꼼수다’는 ‘정치의 엔터테인먼트화’엔 성공한 듯하다. 아이튠즈 팟캐스트를 통해 600여만명이 다운로드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콘텐츠에는 ‘팩트’와 ‘픽션’의 구분이 모호하다. 아니면 말고 식의 ‘카더라 통신’과 다를 바 없다. 다양한 의견 개진과 열린 토론보다는 그들만의 폐쇄성과 편향성이 확대재생산된다. 점입가경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선 나꼼수 사회자 출신 김용민 씨가 모 인터넷 방송에서 내뱉은 막말은 국민들을 경악케 한다.

시장경제에서 이뤄지는 자유경쟁에는 ‘보이지 않는 손’과 ‘법과 질서’라는 법칙이 존재한다. 사상의 자유시장에서도 시장 참여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욕설이나 비방, 근거없는 주장에는 사회적 조치가 따라야 한다. 민간 주도로 인터넷 감시와 평가, 즉 ‘협업적 필터링(collaborative filtering)’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총선을 이틀 앞두고 잘못된 정보를 걸러내고 저질 정치인을 퇴출하는 유권자들의 필터링이 절실하다. 막말 정치가 아닌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 위해서 말이다.

최명수 국제부장 m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