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야채죽 한 그릇 2만원, 간장게장 한 마리 2만5000원, 오징어회 한 접시 1만9500원.’

서울 명동의 음식값이 눈에 띄게 비싸졌다. ‘한류’ 열풍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자 이들을 주고객으로 하는 식당들이 가격을 올린 것이다. 일부 메뉴는 서울의 다른 지역에 비해 50% 넘게 비쌌다. 관광특구 명동이 ‘물가특구’로 떠올랐다. 명동 일대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명동에서 밥 먹기 무섭다는 얘기도 나온다.

30일 오후 명동거리. 골목마다 점심메뉴를 고르는 일본인 관광객들로 붐볐다. 일본 나고야에서 온 아이치 마쓰코 씨(56·주부)는 관광 가이드북을 꼼꼼히 살펴보다가 한 갈비집으로 들어섰다. 아이치씨가 시킨 메뉴는 ‘간장게장’. 게 한 마리가 접시에 담겨져 나왔다. 가격은 2만5000원. 인근 신세계백화점 내 한식당보다 1만원 정도 비쌌다.

거의 매년 한국을 찾는다는 아이치씨는 “몇년 동안 명동의 음식값이 계속 오르고 있다”며 “동대문이나 남대문시장의 식당에 비해 확실히 비싼 것 같다”고 말했다.

횟집 ‘오징어나라’ 명동점의 오징어회 한 접시 가격은 1만9500원으로 신촌점(1만5000원)보다 30% 비쌌고, 시샤모구이는 1만5000원으로 50%나 더 받았다. 이 식당 종업원은 “열흘쯤 전에 오징어 한 마리 가격을 2500원 올렸다”고 설명했다.

모든 메뉴를 일본어로 써붙인 한 영양죽집은 소고기야채죽 한 그릇을 2만원에 팔고 있었다. 일본에서 광고도 한다는 이 식당 손님은 대부분 일본인이었다. 근처의 돈가스집은 ‘치즈돈가스’ 한 접시에 1만4000원을 받았다. 돈가스집의 한 직원은 “명동 일대에선 지난 설(1월23일)을 전후해 돈가스를 중심으로 1000~2000원씩 가격을 올렸다”고 전했다.

식당업주들은 임대료와 인건비가 많이 올라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올렸다고 말하지만, 상대적으로 가격에 민감해 하지 않는 일본인 등 외국인 관광객의 특성을 이용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명동의 한 프랜차이즈 업주는 “한국 손님들은 죽 한 그릇을 둘이서 나눠 먹기도 하지만 일본인들은 가장 비싼 메뉴를 고르는 경우가 많다”며 “가격이 올라도 한번 왔던 곳을 다시 찾아오는 것이 일본 손님들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다른 프랜차이즈 업주는 “일본인들은 대부분 현금으로 결제하기 때문에 식당들이 더 환영한다”고 귀띔했다.

외국인을 주고객으로 삼아 비싼 값을 받고 있는 것이 내국인에게도 그대로 정착되는 분위기다. 명동에서 만난 정우철 씨(24·대학생)는 “일본어가 많이 적혀 있는 식당일수록 더 비싼 것 같아서 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세종 씨(31·회사원)는 “근처 식당이 너무 비싸 요즘에는 회사 구내식당을 이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여전히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는 식당들도 있었다. 명동에서 13년째 한식당 ‘초가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덕자 씨(62)는 “일본 손님들을 많이 받는 식당들만 가격을 올렸지 우리처럼 한국 손님들이 대부분인 식당들은 가격을 올릴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이 식당은 비빔밥, 순두부찌개, 김치찌개를 5000원에 판다. 10년 동안 500원 오른 가격이다. 이씨는 “식당은 많이 늘어났지만 직장인들은 줄고 있다”며 “계속 오르는 임대료와 인건비도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최만수/윤희은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