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Story - '삼성 후계자 결정'이병철 회장 구술 필사본 발견

"장남에 회사 맡겼더니 반년도 채 못되어 혼란빠져"
'87년 주식배분방식 지시' 맹희씨 회고록도 관심
"이건희 승계, 법·제도 절차 70년대초 이미 끝내"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이 “후계자는 3남 건희로, 법과 제도적 절차를 마쳤다”고 직접 말한 것을 받아적은 필사본이 발견됐다. 이 창업 회장의 자서전인 ‘호암자전’을 집필하던 과정에서 구술 내용을 손으로 받아 쓴 자료다.

이건희 삼성 회장 측 법률대리인은 이맹희 씨 등이 제기한 상속 주식 인도 소송과 관련, 이 필사본을 포함한 여러 자료를 이 회장 측으로부터 받아 본격적인 법률 검토에 들어갔다.

◆필사본 어떻게 작성됐나

이 필사본은 이 창업 회장이 1982년 홍성유 당시 중앙일보 고문과 나눈 문답을 기술한 호암자전 ‘초본’이다.

삼성은 이 초본을 토대로 1985년 시험본을 몇 부 제작한 뒤 대대적인 수정·첨삭을 거쳐 1986년 2월 호암자전을 출판했다. 이 때문에 초본은 출판본과 다른 내용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후계자 문제다. 출판본에서 후계자를 다룬 것은 248쪽의 ‘제5장 창업과 수성’의 몇 개 단락에 불과하다. “장남 맹희는 기업에 맞지 않아 스스로 떠났고, 차남 창희는 중소기업이라도 혼자해보겠다고 독립해 나갔고, 3남 건희가 해보겠다는 열의가 있어서”라는 대목이다.
"이건희 승계, 법·제도 절차 70년대초 이미 끝내"

초본에선 ‘삼성의 후계자’(507~524쪽)란 중간 제목 밑에 ‘후계자는 3남 건희로, 법적 제도적 절차 마쳐’란 소제목을 단 부분이 존재한다. 이 창업 회장은 초본에서 “출가외인(딸)은 빼고 3형제가 있는데 이들에게 공동으로 승계시키느냐 또는 3분의 1씩 균분해서 맡길 것이냐를 놓고 수십년 동안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특히 이 창업 회장은 “삼성의 경영을 3남에게 승계시키기로 했다. 이런 방침 아래 1970년대 초에 이미 모든 법적, 제도적 절차를 끝내고 그런 방향으로 체제를 굳혀왔다”고 말한 것으로 적시돼 있다.

이 창업 회장의 맹희씨에 대한 평가는 출판본보다 초본에 더 혹독하게 나와 있다. 출판본에선 “장남 맹희에게 그룹 일부의 경영을 맡겨 보았다. 그러나 6개월도 채 못돼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본인이 자청하여 물러났다”고 표현돼 있다. 초본에선 “주위의 권고도 있고 또 본인의 희망도 있어서 장남 맹희에게 맡겨보았다. 그랬더니 반년도 채 못돼 회사가 혼란에 빠져 본인도 총체적인 경영 정상의 자리를 단념했다”는 구술이 들어 있다.

◆이맹희 회고록에도 주목

이 회장 측 법률대리인은 또 맹희씨의 회고록인 ‘묻어둔 이야기’에도 주목하고 있다. 맹희씨는 20여년 전인 1993년 삼성 경영권 승계과정을 기록한 ‘묻어둔 이야기’를 펴냈다.

법률대리인이 주목하는 부분은 285쪽이다. 맹희씨는 “(1987년) 운명 전에 아버지(이병철 선대회장)는 인희 누나, 누이동생 명희, 동생 건희, 그리고 내 아들 재현이 등 다섯 명을 모아두고 그 자리에서 구두로 유언을 하고 건희에게 정식으로 삼성의 경영권을 물려주었다. 이 자리에서는 건희에게 삼성을 물려준다는 내용 이외에 ‘삼성의 주식을 형제간들에 나누는 방식’에 대한 아버지의 지시도 있었다”고 적었다.

이 회장 측 법률대리인은 ‘삼성의 주식을 형제간들에 나누는 방식’ 속에 차명 주식이 언급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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