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마초들의 전쟁터, 직장…여자라는 이름 뒤에 숨지마라
밥으로 쌓은 정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윗사람이든 동료든 말이다.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회식에, 사우나에, 상사와 담배까지 함께 피우며 네트워크를 만드는 남자들을 구석에서 혼자 과자 부스러기나 먹고 있는 여자가 어떻게 당해낼 수 있을까. 남자들은 혼자 잘났다고 일이 되는 것이 아니고 아군이 많아야 유리하다는 것을 간파하고 지원군 확보에 주력한다. 밥 한끼를 먹어도 매일 파트너를 바꿔가며 전략적으로 먹는다.

광고판에서 10년, 방송판에서 10년을 보내며 카피라이터에서 AE로, 다시 프로듀서로 직업과 직장을 바꾸어가며 살아온 저자는 대한민국 모든 여자들을 위해 이 책 《우리는 같은 병을 앓고 있다》를 썼다고 말한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자는 “22년 동안 겪은 고민과 갈등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 여자후배들을 많이 만났다”며 “나만 잘하면 잘될 거라고 믿는 무모한 노력파들, 이를 악물고 참으면 세상이 알아줄 거라고 착각하는 순진파들, 잘못된 방향인데도 몸과 마음에 병이 날 정도로 열심히 달리는 답답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전한다.

[책마을] 마초들의 전쟁터, 직장…여자라는 이름 뒤에 숨지마라
여성 상위 시대라고 해도 일터에서 여성들의 위치는 여전히 위태로운 변방이다. 예전에 남성들이 맡았던 역할까지 모두 떠안아 여성의 사회적 압박감과 현실적 중압감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책에는 30대 초반에 중역이 되었다는 슈퍼우먼들의 허황된 성공담도 없고 억대 연봉 받는 법을 알려주는 지침도 없다. 대신 동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들의 치열함과 고단함, 실질적이고 내밀한 아픔과 해결책이 담겨 있다.

저자는 많은 사회 초년생들이 여기가 학교인지 직장인지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얼굴에 ‘나 지금 화났음’ 혹은 ‘좋아 죽겠네’ 하는 마음 속 감정을 또박또박 쓰고 다니며 조직생활에서 헛발질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여성들에 비해 남성들은 식사시간을 비즈니스의 장으로 활용하고, 적성과 상관없이 목표가 있고 보상이 눈앞에 보이면 군말없이 곧장 돌진해 상사들에게 믿음직한 인상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여성들을 위한 직장생활 스물두 개의 서바이벌 가이드도 눈에 띈다. 우중충한 얼굴보다 차라리 건방을 떠는 게 낫다는 것, 초반에 지나치게 전력질주 하지 말고 스펙보다 근성을 키울 것, 몰려다니며 여자들끼리만 밥 먹지 말고 의리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 등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