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칼을 뽑지 않고 승리하는 법? … '판' 을 키워라!
애플이 칼을 뽑지 않고 승리하는 법? … '판' 을 키워라!
베레쉬트(bereshith ‘태초에’). 히브리어 성서의 첫 단어다. 태초에 조물주께서 빛과 공간을 창조했다는 창세기 이야기는 종교에 관계없이 널리 알려진 얘기다. 이렇듯 새로운 공간은 신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일까. 인간들은 신이 창조한 공간을 그저 나눠 가져야 하는 존재일까. 이런 관념에 도전한 개념이 ‘블루오션 전략’이다.

블루오션은 레드오션과 달리 주어진 시장 공간을 나눠 갖는 전쟁터가 아니라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공간을 특별히 우주에 비유해 ‘시장 우주(market universe)’라고 표현한다. 지구상의 제한적 공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한, 그것도 인간이 창조할 수 있는 시장 공간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런 게 어디 있어”라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그런 개념이 가능한지 살펴보자.

#새로운 공간을 어떻게 창조하는가

지금 우리 앞에 가방이 있다. 그 가방 안에 현금으로 1000만원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돈가방을 두 사람이 정확히 반으로 나누면 우리는 각각 500만원과 가방 반쪽을 갖게 된다. 물리적인 세상에서는 나누면 적어진다.

하지만 관념의 세상에서는 다른 현상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고기를 잡는 방법 또는 지식을 친구와 나누면 지식이 반으로 줄어들까. 한 사람이 지식을 100% 전달했고, 상대방이 100% 받아들였다면 지식의 양은 두 배로 증가한다. 내가 반만 전달했고, 상대방이 그 반의 반을 받아들였다고 해도 125%가 된다.

지식의 양은 절대로 줄지 않는다. 내 지식 또는 생각을 1000만명에게 전달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내 주장에 사람들이 10%만 동의해도 세상은 변하기 시작할 것이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의 꿈과 비전을 매년 미국 쿠퍼티노 본사에서 전 세계에 알렸고, 그에 동의하는 10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애플 제품을 자랑스럽게 구매해 사용하고 있다.

물리적인 세상에는 경쟁이 있어 공유하려면 나눠야 하지만, 관념의 세상은 창조의 세상이기 때문에 공유할수록 커진다. 생각, 꿈, 비전, 철학을 공유한 사람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물건을 같이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얀 이어폰을 낀 많은 사람들, 또는 까맣거나 하얀 뭔가를 보면서 쉼 없이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

#냉장고와 김치냉장고는 뭐가 다른가

애플이 칼을 뽑지 않고 승리하는 법? … '판' 을 키워라!
이런 현상이 글로벌 리딩 컴퍼니나 애플에서만 가능한 일일까. 이번에는 국내 ‘김치냉장고’를 살펴보자. ‘김치냉장고’와 ‘냉장고’의 차이는 뭘까. 지금은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처음 김치냉장고가 세상에 나왔을 때는 그 차이가 뭔지 몰라 인터넷에 질문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답변들을 보면 재미있다. ‘김치를 많이 넣을 수 있다’ ‘김치를 넣고 꺼내기 좋은 디자인을 가진 냉장고다’ ‘김치를 보관하기 적합한 온도에서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 ‘김장독과 같은 원리다’ ‘냉장고보다 김치 맛을 더 좋게 유지시켜 준다’. 모두 맞는 말이다. 기술적으로는 거의 다르지 않다.

단지 김치냉장고가 냉장고보다 냉장실 내부를 유지하는 온도의 편차가 작다는 것이 유일한 차이다. 그 결과 김치를 일정한 온도에서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 그래서 맛있는 김치를 일반 냉장고보다 더 오래 보관·저장할 수 있다. 여기서 잠깐, ‘일반’ 냉장고라는 표현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거의 없을 것이다. 이제는 일반 냉장고와 김치냉장고로 구분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은 김치냉장고에 김치만 넣지 않는다. 신선하게 오래 보관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다른 식품들도 이곳에 보관한다. 이 때문에 일반 냉장고 시장보다 김치냉장고 시장이 더 커져 버렸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 단지 기술적 차이, 또는 디자인 차이에 의해서 이렇게 새로운 시장이 창조될 수 있을까. 아니다. 기술 또는 디자인 차이가 아닌 재미있는 현상이 시장에 존재한다.

김치냉장고의 수요는 배추값에 따라 변동한다고 한다. 배추값이 오르면 김치냉장고의 수요가 줄고, 배추값이 떨어지면 김치냉장고의 수요가 늘어난다.

결론적으로 일반 냉장고와 김치냉장고는 서로 다른 시장이다. 여기서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 처음으로 김치냉장고를 만든 기업은 어디인가 하는 것이다. 많은 소비자들이 위니아만도로 알고 있지만, 김치냉장고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판매한 곳은 LG라고 한다.

더 아이로니컬하게도 김치냉장고와 관련, 최초의 특허를 갖고 있는 기업은 삼성이라고 한다. 이런 경우 최초로 김치냉장고를 만든 기업은 어디가 되는 걸까. 마케팅 포지셔닝 개념에 의하면 소비자의 인지 사다리를 최초로 점유한 기업이 최초의 기업이라고 한다. 애플이 최초로 터치스크린을 발명하지도, 제품을 만들지도 않았지만 터치의 대명사가 된 것처럼 김치냉장고라는 거대한 시장은 만도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애플의 비(非)경쟁 전략에서 배울 것

그렇다면 김치냉장고 시장은 블루오션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 왜냐하면 김치냉장고 시장은 비경쟁 시장이었다. 대기업 입장에서 김치냉장고 시장은 틈새시장(nitch market)처럼 보였기 때문에 초기에는 무시하고 경쟁하지 않았다. 그래서 만도와 같이 냉장 관련 부품을 만들던 회사가 별 저항 없이 김치냉장고를 만들어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다.

김치냉장고는 그저 김장독을 묻던 소수의 사람, 냉장고 시장의 입장에서 보면 비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제품이라는 점에서도 블루오션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두 가지에 더해서 아주 큰 시장, 기존 냉장고보다 더 큰 시장이 형성됐다는 점에서 블루오션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블루오션 시장을 창조한 만도 혼자서 오랫동안 누리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과연 블루오션을 추구해야 하는지 의문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만도가 보다 치밀하게 신시장 창조를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블루오션 전략을 짜고 행동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그 시장을 유지하고 누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고객을 대상으로 한 전략은 좋았지만, 이를 통해서 시장의 경계를 허물고 새롭게 지으려고 했다거나, 시장 점유율과 같은 숫자가 아닌 큰 그림에 집중하려 했다는 증거를 찾기 어려웠다는 의미다. 소비자의 효용부터 생각하고 그 다음으로 가격과 비용 등을 고려하는 전략적 순서를 밟았는지는 기업 내부의 일이어서 알 수 없지만, 블루오션을 체계화하는 네 가지 전략(아래 표)을 구사했다면 보다 오랜 기간 김치냉장고 시장이라는 블루오션을 누렸을 것이다. 하지만 블루오션의 전략적 접근을 시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김치냉장고라는 개념을 창안하고 체계화해 오늘날에 이르렀다는 점을 고려하면 박수받아 마땅한 업적을 이뤄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만도의 입장에서 억울하게 생각할 것은 없을 것 같다. 최근 대기업이 점점 더 많은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1995년 세계 최초의 김치냉장고 탄생 이후 현재까지 16년 이상이라는 시간 동안 김치냉장고 시장은 ‘빅3’가 비슷하게 점유율을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만도 혼자서 김치냉장고 시장을 형성하려고 했다면 현재 시장의 3분의 1보다 작은 시장이 형성됐을 확률이 높고, 이렇게 오랜 시간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애플이 아이폰을 만든 이후 많은 기업이 스마트폰 시장을 형성, 경쟁하고 아이패드도 비슷하게 태블릿PC 시장을 형성하면서 경쟁하고 있지만 애플은 스스로 아이폰을 스마트폰으로, 아이패드를 태블릿PC로 부르지 않으면서도 시장을 키워나가는 모양과 비슷하다. 필자 생각에 애플은 다른 기업들과 경쟁한다기보다는 시장이 커지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비경쟁 원리를 가장 잘 활용하는 기업이 애플인 것 같아 마음 아프다. 왜냐하면 비경쟁 원리는 ‘손자병법’에도 있듯이 동양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칼을 뽑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개념을 활용해 신시장을 창조하고 누리는 기업이 많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김동준 이노캐털리스트 대표 = △연세대 공학 박사 △삼성전자 VIP센터 디렉터 △현 미국 스트레티고스 네트워크 파트너 △공저 ‘창조경영’ ‘포스트 잡스’ dongjoon@innoCataly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