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비겁한 집단은 노예가 될 뿐이다
최근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와 야당인사 100여명이 미국대사관에 몰려가 “집권 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추진하겠다”며 서한 전달 퍼포먼스를 벌였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쥐죽은 듯 침묵했다. 소위 한·미 FTA를 지지한다는 정당이 “민주당의 한·미 FTA 반대행위를 반대하면 시끄러워져 득표에 손해가 될 수 있다”는 기막힌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는 지금 새누리당이 얼마나 패배주의에 젖은 집단인지를 웅변하고 있다. 세간의 이런 비판이 들렸는지 엊그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이런 야당에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작심한 발언이 나왔다. 늦게나마 새누리당이 변한다면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최근 같은 보신주의 정당이라면 이들이 왜 선거에 나서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최근 인터넷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박주신의 병역비리 의혹이 크게 회자되고 있다. 박주신은 공군 신체검사에서 허리 디스크 판정을 받아 ‘공익’으로 빠졌는데 이에 강용석 의원이 500만원의 현상금을 걸고 그의 허리가 멀쩡함을 입증하는 동영상을 공모했다. 그러자 박 시장이 “잔인하다, 대한민국이 정상이 아니다”고 반응했다는 내용이다.

이 사건은 좌파신문과 방송은 물론 보수신문들도 철저히 보도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1997년과 2002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두 아들 병역면제 의혹이 불거졌을 때는 얼마나 시끄러웠는가. 좌파신문과 방송은 불이 났고 결국 이 후보는 낙선됐다. 좌파단체들은 장남에 대해 “키 179㎝, 체중 48㎏의 미이라를 수배합니다”라며 1000만원의 현상금을 내걸었고 차남은 미국유학 중에 귀국해 기자들 앞에서 신체검사를 다시 했다.

박주신 의혹이 실상 이회창 아들 의혹보다 뉴스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동영상 속 박주신은 ‘전혀 디스크환자답지 않게’ 물건을 들고 계단을 통통 뛰어내려가고 마음대로 허리를 돌리고 굽힌다. 한편 박 시장의 반응도 공인(公人)답지 못하다. 강 의원은 단순히 과거 이회창의 아들처럼 박주신도 공개신체검사에 응해 의혹을 풀라는 것인데, 박 시장은 ‘대한민국이 비정상’이라고 깔아뭉개려는 태도다. 과거 그가 대통령 후보 아들의 의혹을 추궁한 일은 옳고 자기 아들 의혹을 시비함은 대한민국이 미친 때문인가. 서울시장이란 공직자의 이런 언행은 그 자체가 ‘뉴스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뉴스는 곧 소멸될 가능성이 높다. ‘보수꼴통의 비리’가 아니기 때문에 친(親)좌파 언론은 입을 다물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지배하는 친야 성향 청장년층은 지금도 이미 물타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고위공직자의 병역비리 의혹은 그야말로 전 국민의 응징 대상이 되는 사안이다. 그러나 보수언론이 보다시피 침묵함으로써 이 기막힌 호재는 물 건너 갈 지경이 된 것이다. 이는 이들도 새누리당의 ‘실용 병(病)’에 감염돼 보신주의와 야당 따라하기 증세에 익숙한 때문이 아닌가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본래 좌파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법과 원칙은 물론 자신의 신체, 정신과 체면까지 다 버리고 싸운다. 반면 기득권 보수집단은 법, 원칙과 금도(襟度)를 지킨다며 조금이라도 비난받을 일에는 옳다고 생각해도 나서지 않는다. 한마디로 비겁한 무임승차자(free rider)가 보수의 특성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역사는 항상 용기 있는 자를 승리자로 만들었다.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도 과거 동양이 봉건적 노예의 삶을 영위할 때 서방에 자유인(free men)이 등장해 억압적 종교, 정치, 학문 체제를 벗어나 이뤄진 것이다. 비겁한 지식인은 항상 남의 노예가 되었을 뿐이다.

금년 보수와 좌파는 대한민국 역사의 분수령이 될지 모를 두 차례 선거승부를 치른다. 그러나 새누리당이나 언론이 지금같이 보신과 패배주의에 빠져 있다면 올해 우리 선거는 정말 의미 없는 일이 될 것이다.

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kimyb5492@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