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깎아 마땅"…은행의 '다보스 반성문'
스위스 다보스의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 모인 뱅커들이 몸을 한껏 낮추고 있다. 잃어버린 신뢰 회복과 자성을 한목소리로 강조하고 나섰다. ‘월스트리트 점령시위’로 표출된 금융권에 대한 비판을 다분히 의식한 행보다. 1년 전 같은 장소에서 금융규제 완화를 주장하며 각국 정상들과 설전을 벌였던 것과는 딴판이다.

◆반성문 쓰는 은행들

"월급 깎아 마땅"…은행의 '다보스 반성문'
다보스포럼에 참석 중인 비크람 팬디트 씨티그룹 최고경영자(CEO)는 26일(현지시간)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은행을 향한 분노가 깊어지고 있다”며 “은행은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의 역할은 실물경제를 돕는 것”이라며 “은행은 고객을 섬겨야지 은행 스스로를 섬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안슈 자인 도이체방크 CEO도 “금융산업 전체가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은행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보스포럼에 올해 처음 참석한 제임스 고먼 모건스탠리 CEO는 “금융회사 직원들의 봉급을 줄여야 한다”고 질책했다.

지난해 다보스포럼에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CEO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금융규제 이슈를 놓고 설전을 벌였던 것과는 정반대의 장면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휴 반스테니스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스스로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던 은행들이 지금은 (외부 도움이 필요하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컨설팅회사 올리버와이먼이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는 은행에 대한 불신이 어느 정도까지 커졌는지 보여준다. 이 회사가 미국과 영국에서 ‘선호하는 퇴직연금 운용방식’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3%가 자신이 직접 관리하겠다고 답했다. “은행에 맡기겠다”는 답변은 8%에 그쳤다.

◆“유로존 위기 잘 넘길 것”

이날 비공개 세션에서 JP모건 바클레이즈 씨티 UBS 등 대형 금융사 CEO들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를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참가자들은 유럽 위기가 고비를 넘겼다는 낙관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세션 후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밥 다이아몬드 바클레이즈 CEO는 “그동안 재정위기 해결에 대한 진전이 있었던 만큼 올해는 작년보다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이먼 CEO는 “지난달 유럽중앙은행(ECB)이 3년 만기 대출 5000억유로를 은행권에 공급한 것이 상당한 효과를 내고 있다”며 “그리스가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해도 대형 은행들이 지급불능 사태에 빠질 가능성은 제로”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때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에 대출했던 150억달러를 모두 회수하려는 생각도 해봤다”며 “하지만 지금은 계속 영업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일부 미국계 은행들은 여전히 유로존의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유럽 은행 CEO는 “미국인들이 가장 부정적”이라며 “그들은 유로존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불평했다.

한편 파이낸셜타임스는 대형 은행들이 바젤3 등 금융규제 강화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금융시장협회(GEMA)를 확대 개편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 협회는 미국, 유럽 및 아시아의 이익단체들을 통합하고,15개 대형 은행 대표들을 이사회 멤버로 확보할 계획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