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지성의 두 얼굴
[Cover Story] 인터넷 집단 지성, 괴담에 휘둘리면  '집단 저능'으로
“우리는 나보다 똑똑하다(We are smarter than me).”

개방과 참여의 웹 2.0 시대에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라는 말은 그리 낯선 개념은 아니다. 집단지성이란 다수의 사람들이 서로 협력해 얻게 된 집단의 지적 능력을 말한다. 1910년 윌리엄 모턴 휠러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개미의 사회적 행동을 관찰해 얻은 개념이다. 인터넷의 발달은 집단지성에 날개를 달아줬다. 전 세계를 실시간으로 연결한 네트워크에 기존 전통이나 권위를 받아들이지 않는 탈권위의 문화가 생겨났고 여기에 전문가 수준의 지식과 기술을 갖춘 아마추어 집단이 가세했다. 세계인이 모여 1000만 단어 이상의 정보를 구축한 온라인 무료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ikipedia)는 인터넷 집단지성의 대표적인 예다.

# 브리태니커 넘어선 위키피디아

“이렇게 따분할 수가….” 1999년 미국 뉴욕의 주식중개인이던 지미 웨일스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뒤지다가 화가 났다. 양은 방대했지만 오래된 정보가 많았고 틀린 내용도 많았다. 그는 ‘인터넷에 백과사전을 만들면 어떨까’라고 생각했고 온라인 백과사전 운영업체인 누피디아(Nupedia)를 설립했다. 각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가진 전문가를 고용해 지식을 정리하고 업데이트했지만 사이트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이트의 운명은 2001년 개방형 소프트웨어(open source software) 방식을 도입하면서 바뀐다. “검토와 승인 과정을 생략하고 누구라도 글을 올리고 편집할 수 있도록 하자.” 웨일스는 모든 네티즌이 정보 항목을 추가할 수 있고, 회사는 정보가 어떻게 바뀌든 상관하지 않는 사이트를 새로 만들었다. ‘위키(wiki)’라는 방식이었다. 웹 2.0의 대명사인 위키피디아는 이렇게 탄생했다.

위키는 웨일스의 부모가 살던 하와이의 원주민 말로 ‘빨리’라는 뜻. 여러 사람의 손을 빌려 백과사전을 ‘빨리’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집단지성의 힘은 위력적이었다. 사이트를 연 지 2주 만에 2년간 12만달러를 투입해 만든 누피디아의 정보(24개 항목)보다 더 많은 항목의 정보가 올라왔다. 한 달이 되자 200개의 항목이 만들어졌고 1년이 지난 후에는 1만8000개로 늘었다.

한국에서는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의 지식인과 다음의 지식 등을 통해 집단지성의 장이 마련됐다. 하지만 사이트에 올라온 잘못된 내용을 본인밖에 수정할 수 없다는 점과 추가 댓글이 많아질 경우 전부 읽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 집단IQ저하 현상 올 수도


프랑스의 미디어 학자 피에르 레비는 최근 사이버 공간에서의 집단지성에 대해 낙관적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하지만 전통과 권위를 무너뜨린 인터넷 집단지성은 약점이 많다. 우선 익명성을 악용해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거짓 정보를 올리는 등 사이버상의 질서를 파괴하는 ‘사이버 반달리즘(Vandalism)’의 문제가 제기된다. 인터넷 세상에선 실명을 밝히지 않고 정보를 올리고 수정할 수 있어 이 과정에서 희생양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영국 BBC는 2010년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로마 교황청이 위키피디아의 편집을 조작한다”고 폭로했다.

집단지성을 형성해나갈 개인들의 소양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일본 경영의 ‘구루’로 불리는 오마에 겐이치는《지식의 쇠퇴》에서 “지금의 일본처럼 지식이 쇠퇴하고 사고 과정이 마비된 사회에서 집단지성이 발현된다면 집단IQ 저하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집단저능’에 대한 그의 경고가 일본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메시지를 던져준다.

# 군중심리·선동 경계해야


우리 사회의 가치관과 지식의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정치 인지 지도가 우파 보수와 좌파 진보의 대결로 지나치게 단순화돼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합리적 대화와 토론이 설 땅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지식과 의견의 독립성을 견지하기보다 몇몇 ‘파워 트위터’의 생각에 휩쓸리는 경우가 많다. 냉정한 판단과 진실에 대한 추구가 실종된 공간에서는 집단지성보다 군중심리가 난무하게 되고 이를 이용하려는 세력이 들끓게 된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논란으로 빚어진 촛불집회로 한국 사회는 수개월에 걸쳐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렀다.

하지만 나중에 밝혀졌듯 집단을 이끈 지성의 실체는 단순한 사실 왜곡과 선전·선동이었을 뿐이다. 집단지성을 인위적으로 통제할 것인지, 자율규제에 맡길 것인지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미국의 저명한 미래학자인 재런 러니어는 “인터넷 집단지성이 늘 옳다는 믿음은 잘못됐다. 잘못된 정보, 정치적 의도, 군중심리 등이 끼어들면 ‘집단지성’과 반대로 ‘집단저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집단의 힘을 악용하는 괴담 사례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위키 세상은 계속해서 확대될 전망이다.

최만수 한국경제신문 기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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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K·아이폰도 집단 지성의 산물

집단 지성과 산업

[Cover Story] 인터넷 집단 지성, 괴담에 휘둘리면  '집단 저능'으로
집단지성은 이미 문화, 미디어, 소프트웨어, 엔터테인먼트 산업 등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슈퍼스타K, 나는 가수다 등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도 집단지성의 산물이다. 기획사에서 전문적으로 양성했던 신인가수를 네티즌의 투표로 뽑게 된 것이다.

애플의 아이폰은 성공적인 집단지성의 사례다. 애플은 프로그램 개발 키트를 배포해 누구나 아이폰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개발자들은 수익의 30%를 가져갈 수 있었다. 세계의 우수한 개발자들이 앞다퉈 다양한 앱을 쏟아냈다. 애플은 오픈 소스 정책을 통해 수만명의 우수 연구원을 공짜로 얻은 셈이다. P&G도 집단지성을 활용하는 대표적 기업이다. 이 회사는 제품의 35%를 외부 전문가 150만명의 의견에 따라 개발한다. 연간 수십억달러를 투자해 기술을 개발해 놓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R&D의 해답을 외부에서 찾은 것이다.

삼성전자의 연구원들은 사내 포털에서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인터넷, 휴대폰 디자인 등 개인별로 관심 분야를 다룬 블로그가 1000개 이상 개설돼 있다. 지식공유와 협업을 위해 누구나 블로그의 내용을 등록하고 수정할 수 있는 온라인 시스템도 빠르게 갖춰나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공공서비스는 물론 과학과 의학 등에서도 집단지성의 힘이 발휘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의료 커뮤니티 ‘페이션츠라이크미’에는 회원 6만명이 활동하고 있다. 환자들은 이곳에서 자신들의 병력 정보를 다른 회원들과 공유한다. 이런 데이터를 활용하면 범지구적 차원에서 협업이 가능해진다. 의사와 제약회사들은 좀 더 신속하게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해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 《매크로위키노믹스》의 저자 돈 댑스코트는 “집단지성의 힘을 통해 금융시장의 위험성을 낮출 수 있고 금융위기에도 미리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