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두보와 스티브 잡스
새해를 맞아 직원들을 위한 신년사를 준비하며 생각을 정리하던 중 문득 대학시절 읽은 두보의 진주잡시(秦州雜詩)에 나오는 시 구절이 떠올랐다.

‘만방성일개 오도경하지(萬方聲一槪 吾道竟何之·온 천지사방 소리로 뒤덮였는데, 나는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저물어가고 있는 멀고 외딴 한 변경(邊境), 북소리 나팔소리로 가득찬 전쟁의 아우성 중에 ‘나는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두보가 지금의 내게 묻고 있는 것 같았다. “너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제대로 가고 있는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30여년 전 대학시절이나 지금이나 그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고, 타성에 젖거나 게을러질 때면 늘 필자를 깨우는 시 구절이다.

우리 인류사회는 기술과 문명의 발달로 급속히 변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한 소통으로 선거문화가 바뀌고, 거대 정당들도 바뀌고 있다. 전통적인 상거래 방식이 바뀌고, 신문 잡지 방송이 바뀌고, 기업들의 비즈니스 행태도 바뀌고 있다. 인간이 만든 문명의 이기가 이제는 인간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삼성전자 등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들도 죽느냐 사느냐 사활을 걸고 미래를 장악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또한 개개인들은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한경쟁력을 요구받고 있다. 건강관리도 해야 하고, 배우자로서 부모로서 주어진 역할에도 충실해야 하고, 주위의 친구 이웃도 돌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따져보고 소중한 순서로 해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깊이 살피고 마음을 다하면 우리는 반드시 행동하게 된다. 소중했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고 체험을 하면 제대로 알게 되고, 제대로 알면 더 올바르게 행동하게 된다. 진심지성(盡心知性)이 바로 그것이다. ‘진심지성’의 마음으로 살 때 우리는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다.

지난해 스티브 잡스의 사망은 충격적이고 슬픈 일이었다. 우리시대의 위대한 디지털 영웅을 잃은 것이다. 70달러짜리 허름한 청바지를 입은 채 열정에 가득 찬 표정으로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소개하는 프레젠테이션을 하던 잡스. 그는 수차례의 대수술을 받고 말기암으로 죽어가면서도 아이패드 시연장에서 목숨을 걸고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그의 모습은 최첨단 테크놀로지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고민하는 우리에게 이정표를 제시해주고 있다.

혁신과 열정으로 길지 않은 삶을 마감한 잡스의 명상을 통한 삶의 키워드를 떠올려본다. “모든 것을 단순화시켜라(simplify everything). 그리고 집중, 몰두하라(focus).” 이는 1300년 전 천재 시인 두보가 필자에게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닐까 마음속으로 생각해본다.

서종렬 < 한국인터넷진흥원장 simonsuh@kisa.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