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좋으면 오히려 의구심…차별화시킬 진짜 무기 찾아라"
“모두가 한계라고 느낄 때 ‘이제 시작’이라고 호기롭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윤부근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사장이 대학생들에게 강조한 인재의 첫 번째 덕목이다. 1년 만에 만난 윤 사장은 다소 여윈 모습이었다. 절식과 운동으로 체중을 5㎏쯤 줄였다고 했다. 체중을 왜 줄였느냐는 질문에 그는 “몸이 무거워 체력이 달리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윤 사장과의 대담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했던 지난달 22일 수원에 있는 삼성전자 디지털시티에서 이뤄졌다. 학생들은 전원 이공계로 선발했다.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나온 윤 사장과의 소통 접점을 넓히기 위해서였다. 대담은 집무실에서 두 시간가량 진행됐다.

▶배성모=많은 대학생들이 삼성에 입사하면 업무가 힘들고 근속연수도 짧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공계를 다니는 학생의 입장에선 삼성이 최고의 직장이지만 임원이 되지 못하면 40대 초·중반에 퇴사해야 한다고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반면 공무원은 정년이 보장됩니다. 이런 불안감에 전공을 불문하고 공무원 시험에 매진하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윤부근 사장=모든 직장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경쟁이 필연적이란 점은 같다고 봅니다. 그리고 경쟁이 치열할수록 자신과 회사의 역량을 고양시킬 수 있는 겁니다. 적당히 목표를 정해놓고 적당히 일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됩니다. 좀 벅차다 싶을 정도의 목표를 정해놓고 혼신의 힘을 다해야만 성장과 발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경쟁이 없는 조직에서 평생을 보낸다는 것도 끔찍한 일 아닙니까. 재미가 없잖아요.(웃음)

▶김용원=사회는 경쟁과 효율을 우선시하지만 정작 학교에선 평등과 공정이 중요하다는 교육을 받습니다. 사회 발전을 위해 경쟁이 불가피한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패자가 다시 일어서도록 손잡아주지 않는 사회는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요.
"스펙 좋으면 오히려 의구심…차별화시킬 진짜 무기 찾아라"
▶윤 사장=맞는 말입니다.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경쟁이 승자독식과 패자의 고착화를 불러온다는 얘기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취업분석 관련 보도를 보셨는지 모르겠는데요. 국내 취업자 10명 가운데 6명이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인맥이나 연줄 등으로 일자리를 얻는다는 내용이었죠. 여러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경쟁이 없어지면 이런 현상이 더 심해집니다. 개인의 능력과 관계없이 부모의 인맥과 재산, 사회적 지위 등이 사람을 평가하는 전부가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불공정한 것이죠. 우리 사회는 경쟁이 갖고 있는 비인간적인 부분을 너무 감성적으로 부각시키는 경향이 강합니다. 깊게 생각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스펙 좋으면 오히려 의구심…차별화시킬 진짜 무기 찾아라"
▶김다영=현재 컴퓨터공학과에 다니고 있습니다. 주변에 소프트웨어 개발 등 한 가지 분야에만 매진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반면 저는 디자인, 기획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다보니 전공 실력이 떨어져 다소 불안합니다.

▶윤 사장=너무 걱정 마세요. 대학교 학부 수준에서 깊게 공부했다고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회사에서 처음부터 다시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김다영=그렇지만 전공 실력이 부족하면 취업할 때 다른 사람들보다 불리하지 않을까요. 어떤 식으로 대학 생활을 보내는 것이 맞을까요.

▶윤 사장=다양한 분야에 대한 경험과 관심은 취직 이후 더 큰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가령 집적회로를 설계해야 하는 사람들은 그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지만 이를 응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지식과 자질이 필요합니다. 요즘 전자제품들은 성능이나 품질보다는 소비자에게 얼마나 풍부한 감성적 경험과 만족감을 줄 수 있느냐를 놓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애플 창업자인 고 스티브 잡스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도 이 부분이었습니다. 공학뿐만 아니라 인문·사회과학 등에 대한 지식도 필요합니다.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습니다.

▶김재범=바람직한 인재상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합니까.

▶윤 사장=보통 인재라고 하면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을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능력보다는 성격이나 기질이 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아주 작은 일이라도 일단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높게 평가합니다. 그 다음은 자기를 끊임없이 변화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은 아주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에 적응하면서 살아남는 사람이 강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인재를 판별하는 기준은 한계를 어디에 두느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끝이라고 할 때 시작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인재입니다. 성적도 보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최소한의 커트라인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야기를 나눠보고 주관이 뚜렷한 사람을 뽑습니다. 자신에겐 한계가 없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채용합니다.

▶신철중=외람된 질문이지만 사장까지 승진할 수 있었던 자신만의 경쟁력이 있다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윤 사장=글쎄요. 저는 일단 남한테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한 번 물면 놓지 않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제 DNA에 박혀 있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몇 년 전에 사흘 동안 단 한숨도 못 잔 적이 있어요. 기를 쓰고 만든 제품을 내놓았는데 판매가 기대에 못 미치는 거예요. 별것도 아닌 것 같은 경쟁사 제품은 잘 나가고요. 너무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돌이켜보면 지난 시간들이 그런 과정들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또 제가 스스로 노력하는 부분은 남의 얘기를 잘 들으려고 한다는 겁니다. 나중에 취사선택을 할지언정 일단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재범=경청이 중요하다는 얘기는 저희들도 많이 듣고 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윤 사장=그렇긴 하죠. 그래도 자꾸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독서를 습관화하는 것도 중요해요. 책을 읽는 것도 남의 말을 듣는 행위의 일종입니다. 공학만 갖고는 안 됩니다. 인문사회과학과 문화, 예술 등 다양한 책을 접해 사고의 깊이와 외연을 확장해야 합니다.

▶배성모=많은 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이른바 ‘스펙’을 쌓으려고 노력합니다. 해외 어학연수를 가고 자격증을 따고 공모전에도 나가는 등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런 걸로 차별화가 됐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모두가 달려들다보니 꼭 하기 싫은 숙제를 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윤 사장=스펙,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자격증만 다양하게 갖고 있는 사람은 일단 의심하고 봅니다. 여러 분야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면 겉치레를 위해 쓸데없는 노력을 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개개인이 갖고 있는 소질과 취미 등을 고려해 남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합니다. 현실적으로도 이런 것들이 면접관에게 더 어필할 수 있는 요소입니다.

▶김다영=한·미 FTA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해 많은 의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미국의 경제적 식민지로 전락할 것이라고 하고, 반대쪽에선 거대시장을 향해 나아가는 한국 경제의 미래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윤 사장=세상 모든 것들이 내 마음에 들고 유리한 방향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길을 하나 내려고 해도 이득을 보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이 있는 법이죠. 세계 시장은 죽느냐 사느냐, 다시 말해 한 발만 잘못 내디디면 그대로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위험요인들이 득실댑니다. FTA 자체의 선악을 현 단계에서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기업과 경제의 미래는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주어진 여건과 환경 속에서 생존과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신철중=기업의 매출이 오른다고 국민들이 반드시 더 잘 살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윤 사장=개인적으로 삼성전자를 키우는 일이 곧 국가에 기여하는 일이란 신념으로 살아왔습니다. 실제 매출과 수익이 늘어나면 더 많은 세금을 낼 수 있고 사람도 더 뽑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성장하는 기업들이 많아질수록 국부가 증가하고 국민들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가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기업이 저절로 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 누군가는 세계를 무대로 밤잠을 설치며 가슴 졸이는 승부를 하고 있을 겁니다. 여러분들도 곧 그 무대에 서게 될 것이고요. 제 선배들이 그렇게 살아왔듯이 저와 여러분들도 보다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대담 참석자

김다영(23·여) 서강대 컴퓨터공학과
김용원(24·남) 숭실대 정보통신전자공학부
김재범(24·남)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배성모(26·남) 부산대 재료공학부
신철중(27·남) 항공대 항공재료공학과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