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헌 NHN 사장(48)에게는 퇴근 시간이 없다. 수사가 아니다. 그는 잠자리에서도 일한다. 꿈결에 사업 전략이 떠올라 눈을 뜨면 그 내용을 베갯머리에 둔 스마트폰에 재빨리 입력한다. 물론 그가 쓰는 메모 애플리케이션은 '네이버 메모'다. 메모에 찍힌 시간을 보면 오전 1시6분,4시43분 등 새벽 시간대가 수두룩하다. 그는 운동 시간도 아까워 저녁을 최대한 가볍게 먹는 것으로 건강을 관리한다.

김 사장은 최근 전략회의를 앞두고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하고 있던 참에 학창 시절 농구했던 기억이 꿈속에서 떠올라 이를 활용했다. "대학 시절(서울대 법학과) 학과 내에서는 농구를 잘하는 축에 속했지만 어느 날 경영대 학생들과의 경기에서는 영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기억이 있어요. 상대를 과소평가했기 때문이죠.상대를 얕잡아 보지 말고,공을 선수가 있는 쪽이 아니라 선수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던져야 하듯이 뻔하지 않으면서도 신속한 전략이 필요합니다. "

◆분 단위로 이메일 답변

김 사장은 회의나 미팅이 없을 때면 스마트폰을 이용해 분단위로 이메일에 답장을 보낸다. 직원들이 그의 회신 속도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렇다고 성격이 급하진 않다. 오히려 꼼꼼한 편이다. 이메일에 적힌 주요 내용만 확인해도 되지만 첨부된 문서까지 전부 정독한다.

이런 성격은 그가 국내 대표적 정보기술(IT) 기업인 NHN을 이끄는 동력 중 하나다. 김 사장은 국내 포털업체 수장으로는 보기 드문 법조인 출신이다. 1986년 사법고시에 합격해 서울형사지방법원과 서울지법 지적소유권 전담부에서 판사로 근무했다. 이 시절에도 그는 사건기록을 한 자도 빼놓지 않고 봤다고 한다. 생소한 IT업계에서 짧은 시간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성실함 때문이다. NHN으로 이직하고 관련 분야의 책,논문,신문 기사 등을 섭렵하며 'IT근육'을 키웠다. 여기에는 혀를 내두를 정도의 속독 능력도 큰 도움이 됐다. 최근에 나온 고(故)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 분량이 920여 페이지나 되지만,영어 원서를 바탕으로 한글 번역본을 대조해가며 15시간 정도 만에 독파했다고 한다.

김 사장은 2007년 NHN과 인연을 맺었다. 지인의 소개로 NHN 창업자인 이해진 의장을 만났다. 그즈음 김 사장은 인터넷이 앞으로 한국 사회에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했고 관련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해 4월부터 NHN의 경영 고문을 맡았다. 이후 부사장급인 경영관리본부장을 거쳐 2009년부터 NHN을 이끌고 있다.

NHN은 세 번째 직장이다. 판사를 그만두고 1996년 LG그룹에 입사했다. 판사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느껴 보다 역동적인 곳에서 일하겠다는 생각에 로펌이 아닌 기업으로 이직했다. 김 사장은 LG그룹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에서 10여년 동안 일하며 외환위기 시절 구조조정과 지주회사 전환 등 굵직한 현안을 맡았다. 2004년에는 LG그룹 사상 최연소 부사장에 오르기도 했다.

◆소통과 속도의 리더십

올해 48세지만,사내 최고령자인 김 사장은 다양한 경험으로 회사 안정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창립된 지 10년이 넘은 NHN이 벤처 정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특히 음원의 저작권 문제,시장지배적 사업자 논란 등 NHN이 급성장하면서 발생한 법적 이슈를 해소하는 데는 김 사장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NHN에 숨결도 넣었다. 그가 대표를 맡기 전에 NHN의 외부 소통 방식은 건조했다. 공지사항이나 이용자들의 문의사항에 대한 답변이 'NHN ○○부문 담당자' 식으로 사무적으로 표기됐다. 김 사장은 NHN이 인격체로 받아들여지도록 담당자 이름을 쓰게 했다. 이용자들의 소소한 불만에 대해서도 개별적으로 대응하도록 지시했다. 지난 6월에는 '네이버 다이어리'에 김 사장이 직접 글을 올렸다.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나 검색창의 검색 결과에 조작이 없다는 것을 직접 밝혔다. 한동안 지속됐던 조작 논란은 김 사장이 글을 올린 뒤 사그라졌다.

사내 소통에도 적극 나섰다. 사내 게시판의 'CEO 다이얼로그'와 이메일 'CEO 레터'를 통해 개인사,회사 업무 등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식사 약속이 없을 때는 구내 식당을 찾는다. 좋은 기억력 덕도 본다. 한번 대화를 나눈 직원들의 이름과 소속팀을 잊지 않아 다시 만나면 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는 "그래도 사장이 사내를 너무 자주 돌아다니면 사원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수위' 조절을 하려고 한다"고 웃었다.

김 사장이 싫어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 분단위로 일정을 짠다.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의 시간이 새지 않도록 한다. 그는 회의가 답을 내는 과정이라기보다는 확인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회의 참석자들은 회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참석하게 한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다. 회의 시간도 40분을 넘기지 않는다. 그 이상을 넘기면 중언부언되기 쉽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회의 전에 보고 자료를 세 번 정도 보고 회의 시간에는 속사포처럼 묻고 답한다.

"회의는 답만 주는 자리는 아닙니다. 각 부서장들이 사장과 똑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곳이죠.제가 회사를 떠나도 회의에 참석한 임원들 그 누구도 사장을 맡을 수 있을 정도의 판단력을 갖게 해주는 겁니다. 이를 위해 리더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요구되죠.그래서 리더는 만날 틀린 이야기를 하거나 의사결정을 미뤄선 안 됩니다. 책임질 순간을 아는 리더가 존경받을 수 있어요. "

◆평정심의 비결은 '주변인'기질

김 사장은 만날 때마다 웃는 얼굴로 쾌활한 느낌을 준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여유로움이 묻어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일에 치여 사는 최고경영자(CEO)들에게 흔히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는 특유의 '주변인'기질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렸을 적부터 토마스 만의 소설 《토니오 크뢰거》의 주인공처럼 어디에도 선뜻 속하기를 꺼리는 기질이었던 것 같습니다. 판사를 하고 싶었던 것도 한발 떨어져 기록을 보고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죠." 지금도 일이 풀리지 않으면 뚝 떨어져서 보려고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담담함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그가 NHN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미투데이'의 아이디를 '버드워쳐'라고 지은 것도 미국 유학 시절 집 근처에서 하루 종일 관찰했던 새가 떠올라서다.

이런 성향을 가진 그는 지금까지 어떤 곳에서든 '라인'에 들어간 적이 없다. 매스컴에서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생으로 조국 · 김난도 서울대 교수,원희룡 한나라당 의원,나경원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한승 대법원 선임재판연구원 등을 꼽지만 이 중에서 특별히 친한 친구는 없다. LG시절 상사였던 이문호 천안연암대 총장,강유식 LG 부회장 등으로부터 경영 외에도 인생에 관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출생:서울
△학력:배재고,서울대 법학과,하버드대 로스쿨 법학 석사
△가족:부인과 1남1녀
△경력: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 서울지방법원 지적소유권 전담부 판사, LG그룹 법무팀 부사장, NHN 경영관리본부장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