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밥 먹다 보니 손톱 닳아 없어져…제겐 훈장입니다"
"막일로 손톱도 없어진 농업고등학교 출신이 외국계 기업 CEO(최고경영자)를 맡은 게 이상합니까. "

석위수 볼보그룹코리아 사장(61)의 왼손엔 손톱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하도 망치질을 하고 기계를 만져 손톱이 깨지고 닳아 없어졌다. 농사일이나 철공소 작업으로 생긴 '훈장'이다. 농고를 졸업한 후엔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독학을 해 고려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대한석유공사와 현대양행 등을 거쳐 1976년 삼성중공업에 입사했다. 삼성중공업 건설기계부문이 1998년 볼보 측에 넘어간 뒤에도 줄곧 같은 직장에서 기계밥을 먹었다. 영어는 50줄에 들어서야 학원을 다니면서 혼자 깨우쳤다.

16일 서울 한남동 볼보그룹코리아 본사에서 석 사장을 만났다. 국내에서 가장 한국적인 외국계 기업 CEO로 꼽히는 그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점은 바로 한국식 생산 시스템의 경쟁력이다.

볼보그룹코리아의 '창원식 생산시스템'은 '굴삭기 10대가 팔리면 10대를 만든다'는 개념의 생산방식이다. 하나의 생산라인에서 수십 가지 모델을 동시에 생산하면서 조업시간을 단축하고 팔리는 만큼만 생산해 공장 내에 재고가 쌓이지 않게 유지했다. 창원식 생산시스템은 이제 스웨덴에 있는 볼보그룹 본사로 전파되고 있다.

석 사장은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처음엔 창원공장 생산시스템이 저평가돼온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몇년 전부터 그룹에서 창원공장을 모범공장으로 선정,견학을 올 정도"라고 소개했다. 과거엔 우리가 무조건 해외 기업을 따라가는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오히려 해외에서 한국식 생산 시스템을 배우러 오는 상황이 됐다는 얘기다.

창원공장의 또 다른 힘으로 R&D(연구 · 개발) 능력을 꼽았다. 그는 "전 세계에 흩어진 볼보 건설기계 생산기지 중 중국공장 등 대부분이 굴삭기 제조 기술만 갖고 있다"며 "창원공장은 자체적인 설계 기술과 R&D 능력을 갖고 있어 시장 대응 능력이 뛰어난 편"이라고 말했다. 석 사장은 창원식 생산시스템을 정착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말 볼보그룹코리아 사상 처음으로 한국인 CEO에 올랐다.

창원공장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규모의 경쟁력까지 확대한다는 중 · 장기 비전도 처음으로 내놨다. 볼보그룹코리아 건설기계부문의 지난해 매출은 1조7000억원.올해는 2조8000억원 이상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연간 1만7000대의 굴삭기를 만들어 이중 85%에 가까운 제품을 수출하면서 매출이 크게 늘었다.

석 사장은 "750억원을 들여 연말까지 연간 1만7000대인 굴삭기 생산능력을 2만5000대 수준으로 확대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2016년까지 연간 생산능력을 단일 공장으로는 최대 규모급인 총 3만대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중 · 장기 투자계획을 세웠다"고 밝혔다. 이어 "해외 판매 비중도 85%에서 95%까지 늘리고 내수 비중을 5% 이하로 낮춰 완벽한 수출기업으로 변신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볼보그룹 내 아시아오퍼레이션 총괄사장도 함께 맡고 있는 석 사장은 내년 세계 경기 전망을 묻는 질문엔 "최근 몇년간 가장 예측하기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유럽은 이탈리아 스페인 등과 관련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어 쉽게 예측하기 곤란하다"며 "다만 미국과 중동,남미 지역 시장은 올 하반기보다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세계 건설장비 시장의 40~50%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은 긴축 여파로 내년 하반기 이후에나 시장 수요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볼보건설기계코리아는 스웨덴 다국적 기업인 볼보그룹이 1998년 삼성중공업 건설장비 사업부문을 인수하면서 출범했다. 2006년 트럭 부문을 통합해 볼보그룹코리아로 이름을 바꿨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