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 공급권 독점으로 인한 비리는 개선해야겠는데,그렇다고 노무 공급권을 복수노조로 확대하자니 자칫 국가 기간산업이 혼란에 빠질 수도 있고…." 복수노조 허용으로 신규 항운노조들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고용노동부가 고민에 빠졌다. 노무 공급권을 독점해온 기존 항운노조에서 독립한 신규 노조들이 노무 공급권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본지 8월11일자 A13면 참조

고용부는 항만 물동량 감소와 노 · 노 갈등으로 인한 고용상황 악화 등의 이유를 들어 '노무공급 허가권'을 불허하고 있지만,포항 울산 광양 등지의 신규 노조들은 소송을 통해서라도 이를 관철할 방침이어서 항운노조의 이해관계가 노 · 노 간 갈등으로 이어지면서 법정 다툼으로도 비화될 전망이다.

◆노 · 노,노 · 정 갈등 고조

14일 노동계에 따르면 고용부는 최근 경북항운노조 소속 조합원 42명이 결성한 신규 노조인 포항항운노조의 '근로자공급사업 허가(노무 공급권) 신청'을 불허했다. 한 달여간 심사를 벌인 끝에 '두 개의 노조에 노무 공급권을 줄 경우 공급인력 과잉으로 근로자들이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앞서 경북항운노조는 노조 이중가입 금지 등의 규정을 들어 신규 노조 참여자들의 조합원 자격을 박탈했다. 노무 공급권이 무산됨에 따라 신규 노조에 참여한 근로자들은 실업자로 전락할 처지다. 최병찬 포항항운노조 사무장은 "기존 경북항운노조가 노무 독점권을 갖고 있어 조합원 자격 상실은 바로 해고를 의미한다"며 "노무 독점권은 채용비리 만연과 항만경쟁력 저하의 핵심 요인인데도 정부는 기존 노조의 편만 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사무장은 "조합원들이 제명을 당해 생계가 곤란한 상황이어서 '노무공급권 불허가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말했다.

울산민주항운노조 조합원 5명도 최근 법원과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출했다. 민주노총 계열인 이들은 기존 노조에서 나와 새 노조를 설립했다. 울산항운노조는 조합원의 노조 복수가입 금지규정을 들어 이들을 제명했다.

◆양대노총 투쟁장으로 전락 우려도

한국노총 산하 항운노조는 전국 항만에 18개 노조,소속 근로자 1만5000여명을 두고 있다. 국내 최초의 항만노조인 성진부두노동조합이 설립된 1898년부터 항운노조는 관행적으로 노무 독점권을 가졌지만 노무 독점권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는 없다. 다만 직업안정법 33조에는 근로 공급사업 수행에 적합한 노동조합이면 누구든 노무공급 사업이 가능하도록 규정돼 있다. 기존 항운노조도 이 법에 근거,노무공급을 하고 있다.

고용부는 "노조를 설립했다고 해서 반드시 사업 허가를 받는다고는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노무 공급권을 복수노조로 확대할 경우 자칫 항만 하역을 둘러싼 노 · 노 간 갈등으로 수출입 업무가 마비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강성인 민주노총이 신규 항운노조를 적극 지원하는 점도 정부가 신규 노조에 대한 노무 공급권 부여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시각도 있다. 노동계 관계자는 "한국노총 일색이던 항운노조 체제에 민주노총 산하 조직이 울산 · 광양 등으로 진입하는 형국이어서 자칫 양대노총 간 대결로 치달을 우려도 있다"고 설명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