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한예슬과 에릭
'나는 가수다' 최근 방송분에서 사회자 윤도현은 무대에 오를 김범수를 소개하며 말했다. "오랫동안 얼굴 없는 가수였는데 이젠 얼굴로 먹고 사는 비주얼 가수가 됐다. 오늘 명예 졸업을 하고 나면 장차 어떻게 하겠느냐." 김범수는 대답했다. "최선을 다해 지키겠다. "

김범수는 데뷔 이래 최고의 인기를 얻게 된 여세를 몰아 20일부터 관객 7만명을 목표로 전국 12개 도시 순회 콘서트에 나선다. 공중파방송의 힘은 이렇게 놀랍다. KBS 월화드라마 '스파이명월' 여주인공 한예슬 씨가 불과 며칠 새 일으킨 사회적 파장의 크기만 봐도 그렇다.

한씨 사태의 내용은 간단하다. 힘들다며 촬영을 거부한 뒤 미국으로 나갔다 파장이 커지자 돌아와 사과하고,촬영 현장에 복귀했다는 것이다. 그 사이 드라마는 결방됐다.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질타와 함께 드라마 제작환경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심지어 '배우는 부당 노동을 항의하면 안되느냐'는 주장까지 나왔다.

[천자 칼럼] 한예슬과 에릭
그는 귀국 후 "저 같은 희생자가 다신 생기면 안된다고 굳게 믿는다. 그러지 않고선 절대 개선되지 않을 상황 때문에 옳은 일을 했다고 믿고 싶다"고 말했다. '상황이 얼마나 어렵고 열악한지 국민들이 알아줬으면 했다'는 대목도 있다.

주연의 경우 허구한 날 밤샘 촬영을 하느라 방송 중엔 하루 평균 서너 시간밖에 잘 수 없다는 게 국내 드라마 제작 현실이다. 고달플 게 틀림없다. 그러나 회당 출연료만 3000만원이란 마당이다. 주 7일 촬영한다 해도 하루 400만원이 넘는다. 유통업체 등에서 다리가 퉁퉁 붓도록 서서 일하는 사람들의 석달치 봉급이다. 그들 대다수는 아파도 쉬지 못한다.

배우는 또 드라마 출연으로 얻은 인기 덕에 엄청난 액수의 광고모델 수입을 올린다. '저 같은 희생자'라는 말이 거북하게 들리는 이유다. 대접받는 여주인공이 그 정도면 전체 촬영스케줄을 감당해야 하는 현장 스태프들의 고생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상대역 배우 에릭 씨는 트위터를 통해 '방송은 나가야 하고,시청자와의 약속과 금전적인 계약서의 약속도 있기에 다들 끝까지 잘 마무리하자 파이팅을 했지만 막상 촬영을 이어가는 모두의 마음은 편치 않을 듯싶다'고 썼다. 또 "미래의 후배보다 매일 살 부딪치는 스태프가 더 소중하다"고 털어놨다. 한씨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