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국가의 간섭보다는 개인의 자유가 발전 이끈다
올 들어 물가가 급등하면서 정부와 정치권은 하루가 멀다하고 다양한 형태의 가격규제 조치를 내놓고 있다.

대형마트 현장조사를 통해 생필품 가격 동향을 감시하는가 하면 정유사를 압박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한시적으로 ℓ당 100원씩 인하했다.

전 · 월세값이 급등하자 정치권은 전 · 월세 상한제를 추진 중이고,대출이자의 상한선을 낮춘 이자제한법 개정안이 지난달 국회를 통과했다.

내용과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초를 둔 조치다.

과연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국민의 경제적 후생을 높일 수 있을까.

# 경제를 이끄는 '보이지 않는 손'

신자유주의는 이런 질문에 '결단코 아니다'고 답한다.

오히려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규제를 줄이는 게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이라고 외친다.

전 · 월세 상한제를 도입하는 것보다는 주택 공급을 가로막는 규제를 없애 전 · 월세 공급을 늘리는 게 가격 안정에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역사는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럽에서는 르네상스와 절대왕정 시대를 거치면서 국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중상주의가 대세를 이뤘다.

이런 흐름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다.

그는 1776년 출간한 저서 '국부론'에서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가격이 결정되고 거래가 이뤄질 때 경제적 효용이 극대화된다고 설파했다.

정부의 '보이는 손'(계획)이 아닌 수요 · 공급을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손'(시장원리)이 경제를 지배할 때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 시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시장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자유주의는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다.

자유주의 경제 철학은 카를 멩거,윌리엄 제번스 등 19세기 오스트리아 빈대학 교수들을 중심으로 한 오스트리아 학파와 루드비히 폰 미제스,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등의 20세기 신오스트리아 학파로 이어지면서 사상적 체계가 완성됐다.

자유주의는 1929년 미국에서 발생한 대공황을 계기로 정부 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한 케인스학파에 주도권을 내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국가들이 복지국가를 지향하면서 정부 개입의 폭은 더욱 확대됐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성장률 하락과 물가 상승이 함께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복지정책에 따른 재정 부담이 커지면서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는 자유주의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역사의 전면에 다시 등장했다.

# 민간 자율 확대로 경제 활성화

"오직 나의 행위가 타인에게 해를 입힌다는 사실에 근거해서만,내가 원하는 것을 못하게 하거나,나의 의지에 반하여 나에게 무엇인가를 행하도록 강요할 수 있다.

" 밀이 '자유론'에서 외친 이 말은 자유주의의 철학을 웅변으로 대변한다.

자유주의는 국가의 간섭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책임이,규제가 아니라 혁신이 역사와 사회 발전을 이끈다고 본다.

그래서 자유 시장(시장경제)과 법에 의한 지배,사유 재산의 존중,노동시장의 유연성,독립적이며 행동에 책임을 지는 개인 등이 기본 철학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도 정부 개입을 줄이고 경제주체들의 자율성을 보장해 창의와 혁신을 이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대표적인 게 감세다.

세금 부담이 줄면 개인과 기업이 가져갈 수 있는 이윤이 그만큼 늘어나 근로 의욕이 높아지고 투자가 활성화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감세를 하면 정부의 조세 수입이 줄어 복지정책 등에 쓸 돈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감세정책이 세금 수입을 늘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감세정책의 결과로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고 소득과 소비가 증가하면 낮은 세율을 적용해도 최종적으로 산출되는 세금은 증가하는 것이다.

# 글로벌 금융위기 후 비판받기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신자유주의는 위기의 원인이 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과도한 규제 완화가 금융권의 무분별한 투자를 부추겼고 금융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대규모 금융 부실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 강력하게 시장에 개입해 시장의 실패를 교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이는 위기의 원인을 잘못 짚은 것이라고 말한다.

규제 완화가 아니라 정부의 실패,즉 정부가 과도하게 금리를 내려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고 마땅히 해야 할 금융감독에도 실패한 게 원인이라는 얘기다.

금융통화정책을 건전하게 실시하기만 했어도 위기는 없었을 것이란 뜻이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세계 각국이 재정지출을 늘리고 규제를 강화하는 등 큰 정부가 대세다.

위기로 살림살이가 팍팍해지고 기업 간,계층 간 양극화가 심화된 것도 한 요인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큰 정부는 더 큰 실패를 야기한다. 민간의 창의성과 혁신 정신을 북돋우는 게 궁극적으로 모두가 잘 사는 길이다.

유승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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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질서의 양대 모델 '워싱턴 컨센서스 vs 베이징 컨센서스'
[Cover Story] 국가의 간섭보다는 개인의 자유가 발전 이끈다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는 세계를 이끌어온 미국의 이념을 뜻한다.

신자유주의(neo-liberalism)가 그 근간이다. 미국 경제학자 존 윌리엄슨이 1989년 자신의 저서에서 처음 사용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탄생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은 세계 각국에 자금을 제공하면서 시장경제와 민영화,자유무역,민주주의 등을 요구했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이런 과정을 거쳐 오랫동안 세계를 이끈 지배이념이 돼왔다. 물론 반발도 있었다.

헤지펀드 대부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가 "워싱턴 컨센서스는 (시장이 만능이라는) 시장 근본주의"라고 비판한 게 한 예이다.

베이징 컨센서스(Beijing Consensus)는 중국식 경제개발 모델을 뜻하는 말로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립하는 개념이다.

자유시장과 계획경제의 혼용,국가자본주의,큰 정부와 규제 등이 주요 내용이지만 워싱턴 컨센서스와 달리 아직 명확한 개념이 정립된 상태는 아니다.

시사주간지 타임의 국제뉴스 편집장을 지낸 조슈아 쿠퍼 라모가 2004년 '베이징 컨센서스'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 시장경제를 도입한 중국식 발전모델을 개념화했다.

미국발 경제위기 이후 베이징 컨센서스를 앞세운 차이나 모델이 부상하고 있지만 워싱턴 컨센서스처럼 세계를 이끌 지배이념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