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망,티코,마티즈…'.한국GM의 전신인 대우자동차의 베스트셀링 모델들이다. 1980~90년대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빅 히트를 쳤던 이들 차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대우자동차의 혈통을 이어받은 한국GM은 쉐보레 브랜드를 앞세워 제2의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출범 6개월을 맞은 한국GM의 역사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효시격인 신진공업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진공업에서 한국GM까지

한국GM의 모태는 1955년 설립된 신진공업이다. 신진공업은 1965년 도요타의 지분을 끌어들여 새나라자동차를 인수,신진자동차공업으로 상호를 바꾸고 자동차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신진자동차는 도요타에서 코로나를 들여와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1972년 도요타가 철수하자 신진은 GM으로부터 50% 지분 투자를 받고 GM코리아로 이름을 바꿨다. 하지만 1976년 GM코리아가 경영 위기에 빠지면서 한국개발은행이 GM코리아 주식을 매입했고,회사이름은 다시 새한자동차로 바뀐다. 그 뒤 새한자동차는 대우그룹이 경영에 참여하면서 1983년 대우자동차로 재출범했다. 대우차는 XQ 엔진을 개발하고 승용차 트랜스미션 조립공장을 준공하는 등 사세를 넓혀가는 한편 신차 '맵시나'로 돌풍을 일으켰다.

1986년 대우차는 '로얄 살롱' 시리즈로 독자적 이미지 구축에 성공했다. 대우는 같은해 세계 시장을 겨냥해 독일 오펠사의 카데트(Kadet E)를 기반으로 르망을 내놓았다. 르망은 국내 시장에서 40만대 이상 팔리고,미국 수출 길에도 오른 효자 상품이 됐다.

1987년 대우차가 최초의 고유 모델로 출시한 에스페로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디자인에 힘입어 호평을 받았다.



◆대우자동차의 흥망성쇠

1990년대는 티코의 성공이 회사를 이끌었다. 1991년 '국내 첫 경차'로 탄생한 티코는 2001년까지 10년 동안 63만대 이상 팔렸다. 대우차는 자동차 판매에 탄력이 붙자 1992년 GM과의 관계를 청산했다. 그 이후 대우그룹은 대우자동차판매를 설립,생산과 판매를 분리하는 등 체계적인 자동차 사업의 면모를 갖춰 나갔다.

1997년에는 라노스,누비라,레간자 등 독자모델 3개를 동시 출시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신차 3종은 대우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을 10%에서 25%까지 끌어올리면서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와 함께 국내 완성차 시장의 3강 구도를 형성했다. 신차 인기에 힘입어 대우차는 해외 사업을 확대해 나갔고,1998년에는 쌍용자동차까지 인수했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모기업인 대우그룹이 경영난에 빠지면서 2000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대우그룹 붕괴 후 대우차는 과거 합작 관계였던 GM에 인수된 뒤 2002년 10월 GM대우로 재출범했다. GM대우는 지난해 기준 연매출 12조6000억원,연간 수출 184만대의 실적을 올렸다.

◆'쉐보레'로 새역사 쓴다

GM대우는 지난 1월 사명을 한국GM으로 변경하고,쉐보레 브랜드를 국내 시장에 들여오기로 했다.

마이크 아카몬 한국GM 사장은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내수 점유율 향상과 글로벌 브랜드로서의 성장을 위해 회사 이름을 바꿨다"며 "GM그룹의 자회사로서 내수시장 확대와 수출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아카몬 사장의 말은 하나씩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쉐보레 효과'를 낳으며 GM대우 시절 7%대에 맴돌았던 내수 승용차 시장 점유율은 지난달 10%대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GM은 하반기 쉐보레의 첫 글로벌 중형차인 '말리부'와 '알페온 e어시스트'의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다.

한국GM 관계자는 "상반기에만 6종의 신차와 함께 3-5-7 쉐비 케어(3년 무상점검,5년 10만㎞ 보증수리,7년 24시간 긴급출동)와 같은 고객 서비스 프로그램을 내놓았다"며 "하반기에 한층 공격적인 신차 출시와 마케팅으로 올해 내수시장 목표인 연간 두 자릿수 점유율을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