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자동차 도시'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세계 최대 자동차부품회사 보쉬의 포이어바흐 공장은 97년의 역사가 무색하게 깔끔하고 잘 정돈돼 있었다. 디젤엔진에 들어가는 연료분사장치 인젝터를 비롯해 연료를 고압으로 뿜어주는 고압펌프,펌프의 기본틀인 하우징을 만든다.

공장 안에 들어서자 기계 소음와 함께 바삐 돌아가는 생산라인이 보였다. 생산인력 3500명이 전 세계 시장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는 디젤엔진용 고압펌프를 하루 8000개씩 만들어냈다. 10초당 1개씩 생산하는 셈이다. 고압펌프는 경유를 작은 입자 형태로 바꾼 뒤 엔진 실린더에 주입,완전 연소가 되도록 하는 핵심 부품이다. 조립책임자인 한스페어 식스트 매니저는 "연비가 ℓ당 20㎞ 이상이면서 이산화탄소와 배출량도 적은 '클린디젤' 수요가 늘고 있다"며 "4조 3교대 풀가동으로 24시간 동안 생산해도 물량을 맞추지 못할 정도"라고 했다. 보쉬 측은 생산과정을 보여주면서도 사진촬영을 금지하는 등 보안유지에 민감했다. 사람의 머리카락 두께(0.05㎜)의 2%에 불과한 1㎛(0.001㎜) 오차를 통제하는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생산하지 못하는 부품이다.

하우징을 쌓아 놓은 곳에서 식스티 매니저는 부품에 붙은 작은 전자칩을 가리켰다. 그는 "이 전자칩에 생산과정이 자동으로 통제되기 때문에 작업자의 숙련도에 관계없이 동일한 품질과 생산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보쉬 생산방식(BPS)'이다. 수십단계의 복잡한 공정을 정보기술(IT)을 활용해 단순화하고 적시 · 적기 생산체제를 구축하는 게 핵심이다.

보쉬는 포이어바흐 공장을 '리드 플랜트'(선도 공장)로 부른다. 이곳에서 개발한 BPS 등 노하우를 전 세계 35개 생산거점에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안케 페터슨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는 "BPS를 통해 글로벌 생산기지의 품질을 극대화하고 맞춤형 부품 생산을 늘리는 한편 재고를 최소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쉬는 이 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폭스바겐이나 BMW,메르세데스 벤츠,크라이슬러,혼다 등 전 세계 거의 모든 완성차 업체에 부품을 공급한다. 현대 · 기아차도 예외가 아니다.

1886년 설립된 보쉬는 엔진 · 변속기 부품부터 안전 · 편의장비까지 자동차 핵심부품을 전 세계에 공급한다. 지난해 473억유로(한화 74조7300억원)의 매출 가운데 281억유로(44조3900억원 · 59%)를 자동차 분야에서 올렸다. 르네 렌더 디젤시스템 영업 부사장은 "보쉬는 하루에 15개의 특허를 신청하고 있으며 지난 한 해 동안 3500건의 특허를 받았다"고 말했다.

슈투트가르트(독일) =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