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연구원이 지난해 성공기업들의 사례를 연구해 '스몰자이언츠'라는 한국형 강소기업 모델을 내놨을 때 나타난 공통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글로벌 시장에 대한 남다른 집념과 세계 시장에 내놔도 밀리지 않는 기술력이다. 결국 자원,시장,인력 등 인프라에 기대기 힘든 한국의 중소기업들에는 '기술력이 곧 힘'이라는 고전 명제를 증명한 것이다. 한국경제신문과 기술보증기금은 세계시장을 호령할 채비를 갖춘 예비 강소기업들을 선정해 5회에 걸쳐 소개한다. 기보가 최근 6년간 심사한 10만여개 업체 가운데 남다른 기술력을 갖췄다고 평가받은 업체들이다. 이들은 걸음마를 떼기 시작할 즈음부터 연구 · 개발(R&D)에 매진,글로벌 강자들과 경쟁하고 있다.

이주형 옵티스 사장(54)이 처음으로 창업을 생각한 것은 삼성전기 상무로 근무하던 2005년 3월이었다. 당시 삼성전기가 수익성이 낮고 미래가 불투명하다며 광픽업 부문 구조조정 계획을 밝혔지만 이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삼성전기 같은 대기업으로선 사업 철수가 합리적 결정이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시장이 성장하고 있고 응용분야가 많아 속도를 갖춘 중소기업이라면 해볼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광픽업은 노트북,컴퓨터,DVD플레이어 등에 장착돼 CD의 정보를 읽어내거나 입력하는 데 쓰이는 광모듈이다. 이 사장과 광픽업 부문 연구원 등 7명은 회사를 나와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 퇴직금을 털고 대출까지 받아 삼성전기의 광픽업 설비를 인수했다.

초기부터 삼성전자에 납품을 시작했지만 규모는 미미했다. 이 사장은 "삼성전자,삼성전기를 거치면서 광픽업 부문에서 10년 이상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어서 기술력은 충분했다"며 "그러나 당시 삼성전자에 납품하던 산요,미쓰미,산쿄 등 일본업체들과는 기술 수준이 30% 이상 떨어졌었다"고 설명했다.

옵티스는 초기 생산을 위탁하고 철저하게 R&D에만 매달렸다. 사업초기에 매출도 없이 R&D에 투자하느라 자금난을 겪었지만 기보의 보증을 통해 15억원을 지원받아 숨통을 틔웠다. 이듬해엔 스틱인베스트먼트로부터 60억원을 투자받아 생산라인도 갖췄다.

옵티스의 기술력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삼성전자 내 점유율은 가파르게 증가했다. 삼성전자에 광픽업을 납품하던 5개 상위 일본기업 중 4곳이 옵티스에 밀려 차례로 떨어져나갔고 지금은 산요와 옵티스가 양강체제를 구축하게 됐다. 2006년 5억원 수준이던 매출은 이듬해 195억원으로,지난해에는 1400억원으로 수직상승했다. 올해는 매출 2500억원,영업이익 75억원을 목표로 잡고 있다. 매출 기준으로 광픽업 분야에선 산요,히타치에 이은 세계 3위다.

이 사장은 "일본 지진으로 경쟁업체들이 생산 차질을 빚다 보니 우리한테 주문이 몰리고 있다"며 "근로자들이 한 달에 주말을 포함해 단 하루만 쉬고 있다"고 말했다.

옵티스는 올해 또 한 차례 도약대에 서게 됐다. 리스크 요인으로 꼽혀온 단일 거래처(삼성전자),단일 아이템(광픽업)에서 벗어날 전망이기 때문이다. 우선 올해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상반기 중 하드디스크 세계 3위 업체인 대만 PLDS에 납품하게 됐다. PLDS는 거래에 앞서 이 회사를 '찜'하기 위해 회사에 대한 투자도 병행했다. 단일 아이템 리스크도 올해부터 벗어난다. HDD용 스핀들 모터를 이달부터 양산하고 휴대폰용 3D 카메라 모듈도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이 사장은 "광픽업은 렌즈와 포토다이오드 등 휴대폰 카메라 모듈과 부품구성이 유사해 충분히 경쟁력을 갖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클라우드 PC,USB 등이 대중화되면서 CD시장을 어둡게 보는 시각이 있지만 장기보관 기능 등 장점 때문에 지금도 연 7%씩 성장하고 있다"며 "게다가 광학분야는 차량과 도로,스마트TV 등으로 확대되고 있어 미래가 밝다"고 덧붙였다.

수원=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