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인사(人事)

통계청장으로 부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아파트 앞 단골 정육점에 들렀는데 가게 벽에 필자의 통계청장 인사 기사가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정육점 주인은 "내 친구가 통계청장이 됐다"고 주변에 자랑을 했다고 한다. 커다란 취임 축하 화분을 받은 것보다 더 기뻤다. 바쁘게 생활하면서 같은 아파트 주민과 경비원,야채가게 아줌마,세탁소 아저씨 등 이웃의 도움을 많이 받아왔다.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까 하다 먼저 다가가 반갑게 인사하고 말을 건네다 보니 어느 새 습관이 됐다.

개인화한 세상 속에서 이웃 간 정이 예전만 못하고 각박해진 것은 사실이다. 최근 한 여성포털 사이트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성인 절반이 "이웃사촌이 없다"고 응답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조사결과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이웃이 정을 나누는 소통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사생활을 방해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웃사촌은 거주지역이 같다고 해서 저절로 형성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엘리베이터에서나 출퇴근길에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먼저 건네는 것이 관계 맺기의 출발이다. 내가 이웃에 전한 이런 작은 친절은 반드시 큰 친절로 되돌아온다. 가끔 깜박하고 차량의 전조등이나 미등을 켜둔 채 집으로 가면 바로 인터폰으로 알려주고,부재 중에 택배가 왔을 때는 대신 받았다가 전해주기도 한다.

어느 유명한 분이 시작해 화제가 된 이후 90도 인사가 유행이다. 접히는 휴대폰을 닮았다고 해서 '폴더 인사'라고 불리기도 하는 90도 인사는 사실 각종 선거철에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후보자의 당선되고자 하는 열망만 보일 뿐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하면 선거가 끝나면 그 분들의 몸은 폴더폰이 아니라 다시 막대형 휴대폰으로 돌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해서는 90도 인사까지도 필요 없다. 가벼운 눈인사와 몇 마디 말이면 족하다.

인사는 리더십에도 도움이 된다. 부임한 후 청사에서 직원들을 만나면 먼저 인사하고,이메일을 통해서도 직원 개개인들의 안부를 묻곤 했다. 처음에는 낯설어하다가 이제는 직원들이 먼저 집무실을 찾거나 이메일로 다양한 의견을 자발적으로 보내는 관계로 발전했다. 고개를 숙여 하는 인사(人事)와 인재를 중용하는 인사(人事)가 같은 한자를 쓰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정말 '인사가 만사'인 것이다.

소셜네트워킹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의 보급 속도가 눈부시게 빠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통한 인맥 쌓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서도,심지어 밥을 먹을 때도 스마트폰 화면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정작 곁에 있는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 맺기에 소홀히 하는 우를 범하는 게 아닐까 싶어 염려스럽다. 수그린 고개를 잠깐 들어 주변에 있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자.인맥쌓기도 온 · 오프라인 사이에서 중용의 덕이 필요한 세상이다.

이인실 < 통계청장 insill723@korea.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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