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등록금·'영어강의논란' ···'서남표 리더십' 기로에···



[Focus] 도마위에 오른 ‘KAIST식 교육’···“수업방식 바꿔야” vs “개혁 지속” 팽팽

'과학 수재'들이 다니는 KAIST가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올 들어 학생 4명과 교수 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학사운영과 학생관리 방식이 도마에 올랐기 때문이다.



숨진 학생과 교수의 사연이 저마다 달라 공통점이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한 학교에서 이처럼 연달아 비극이 벌어진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들어 많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한쪽에서는 서남표 KAIST 총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다른 쪽에서는 '마녀 사냥'이라고 맞선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학 교육에 대한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 잇따른 자살이 부른 KAIST 위기

지난 1월8일 대전 유성구 KAIST 교내에서 2학년생 조모씨(20)가 숨진 채 발견됐다.



조씨는 학업 및 이성 문제로 고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전문계 고교 출신으로 '로봇 영재'로 불렸다.

3월20일에는 2학년생 김모씨(19)가 경기 수원 자택에서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정확한 자살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같은 달 29일 경영학과 4학년 장모씨(25)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씨는 조울증 치료 중이었다. 이달 7일에는 2학년 박모씨(휴학생 · 19)가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자살했다.



박씨는 우울증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이들 가운데 장씨는 일반 고교 출신이다.



김씨와 박씨는 과학고와 과학영재고를 나왔다. 장씨를 제외한 3명의 학생은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KAIST에 들어왔다.

4명의 학생에 이어 지난 10일에는 생명과학대 박모 교수(54)가 대전 유성구의 한 아파트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교과부가 KAIST에 대한 종합감사를 끝내고 연구 인건비와 관련한 징계 및 검찰 고발 방침을 통보하자 고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 징벌적 등록금 · 영어 강의 논란

잇따른 자살로 이른바 '서남표식 개혁' 정책이 논란에 휩싸였다.



서 총장이 도입한 '징벌적 등록금제'(학점이 일정 기준에 미달하면 수업료 부과)와 100% 영어 강의 등이 대표적이다.



지나친 경쟁 유발과 성적 위주의 학사운영으로 학생들이 심한 정신적 압박에 시달렸다는 주장이다.

KAIST는 2007학년도 이후 신입생부터 입학년도 1 · 2학기 성적을 합산한 평균평점을 기준으로 2년차 1학기부터 성적에 따른 수업료를 부과해왔다.



평점이 3.0점(4.3점 만점)에 미달하면 0.01점당 6만원의 등록금을 내야 한다. 1학년은(입학 후 최초 2학기) 수업료가 부과되지 않는다.



2학년 1학기는 1학년을 성적을 기준으로,그 이후 학기는 직전 학기 성적을 기준으로 수업료를 산정한다.

이렇게 학점 미달로 수업료를 낸 학생 수는 2008년 302명,2009년 611명,2010년 1006명으로 해마다 늘었다.



이들 학생이 낸 총 수업료도 2008년 6억8000만원,2009년 14억1000만원,2010년 25억5000만원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2007학번부터 수강 신청한 교과목의 성적에 관계 없이 3과목에 한해 재수강을 허용하고 있다.



필수과목 성적이 F인 경우와 인성 · 리더십,체육,연구과목은 예외다. 100% 영어 강의도 논란의 대상이다.



KAIST에서는 국어 등 일부 과목을 제외하고 전면 영어강의가 실시되고 있다.

⊙제도 개선 어떻게 이뤄질까

어떤 식으로든 학사운영 방식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



KAIST 교수협의회는 학교와 관련한 모든 사항을 논의하기 위한 혁신비상위원회 설치를 요구했고,서 총장이 수락했다.



교수와 학생 대표가 참여하는 혁신비상위는 앞으로 3개월 동안 최근 사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보고서를 만들게 된다.



서 총장은 혁신비상위의 결정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

문제는 변화의 방향과 폭이다. 학사운영 개선안을 놓고 벌써부터 논란이 벌어졌다.



KAIST는 지난 12일 오후 학사운영 개선안을 발표한 뒤 5시간 만에 백지화시켰다.



하지만 15일 열리는 이사회 안건으로 다시 올리는 등 혼선을 빚고 있다.



여기에는 △전공과목에 한해 영어 강의 △학부과정 학업부담 20% 감축 △입학 후 1년간 학사경고(평점 2.0 미만) 면제 등이 담겨 있다.

서 총장은 교양과목 전체를 우리말로 강의하겠다는 부분과 학부과정 학업부담 경감폭,학사경고 면제 등에 반대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 총장은 지난 13일 혁신비상위 설치 요구를 수용하면서 "어떤 결론이 나올 지 모르지만 학교가 나아갈 큰 방향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석한 주대준 대외부총장도 "KAIST 개혁의 후퇴나 포기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혁신비상위 활동 과정에서 보다 큰 변화를 요구하는 일부 교수 및 학생과 서 총장이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서남표 총장의 공과(功過)

서 총장의 개혁 정책에 힘입어 KAIST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2006년 198위에 머물렀던 세계대학순위(영국 QS-타임지)가 2009년 69위로 뛰어오른 게 대표적인 사례다.



서 총장이 추진한 일련의 개혁 정책들은 국내 대학의 새로운 모델로 각광받기도 했다.



많은 대학들이 앞다퉈 경쟁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최근의 사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 총장을 지지하는 교수와 학생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개혁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부작용도 낳은 만큼 반대의 목소리도 많다.



반대론자들은 서 총장이 '일방통행식' '독불장군식' 개혁을 추진,소통이 부족했다는 점을 거론한다.



KAIST 교수협의회는 "합리적인 소통과 구성원의 동참이 없는 개혁은 지속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서 총장은 1961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기계공학과에서 학 · 석사를 마치고 1964년 카네기멜론대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6년 7월 KAIST 총장으로 선임됐고 작년 7월 연임에 성공했다. 서 총장은 취임 이후 교수들의 테뉴어(종신임기) 제도를 손질했다.



최근 4년간 심사 대상에 오른 교수 148명 중 35명(24%)를 탈락시켰다.



그는 MIT 기계공학과 학과장 시절에도 교수진 40%가량을 새로 임명하고 교과과정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개혁을 단행했다.

⊙ 전문가들,"교육 방식 바꿔야"

전문가들은 '교육 시스템과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진단한다.



강태진 서울대 공과대학장은 "지금 학생들은 학점과 취업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그는 "KAIST는 너무 급하게 하다 보니 가르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한계에 봉착했다"며 "기초필수 과목은 한국어로,나머지는 영어로 하는 식으로 운영의 묘를 살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종태 포스코 사장은 "집에서는 과잉보호를 받고 밖에서는 입시 · 학업경쟁에만 몰두하는 외골수형 인간을 양산하는 것이 문제"라며 "이들은 경쟁에서 낙오되면 살 수 없을 것 같은 스트레스를 느낄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 사장은 "가치관과 직업의식,살아가는 방식을 제대로 가르쳐줄 수 있는 교육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차동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상임위원은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하게 하고 일방적으로 내모는 경쟁 시스템,실패하면 낙오자로 보는 경직적 사회 구조를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건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leekh@hankyung.com

☞차등 등록금 관련 생글기자 찬반토론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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