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지업계에 요즘 '골판지'가 화두다. 종이 시장의 '주류'인 인쇄용지 업종이 수요 감소로 불황인 것과 달리 골판지 업종은 택배,인터넷쇼핑 등의 발달에 힘입어 수요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인쇄용지 업체가 골판지 시장에 뛰어들면서 사업 다각화를 시도하는가 하면 골판지 업계 내에서도 인수 · 합병(M&A)이 이뤄지는 등 지각 변동이 일고 있다.

'골판지' 시장 지각 변동의 시발점은 한솔제지다. 한솔제지는 지난달 말 490억원을 들여 골판지 제조업체 대한페이퍼텍을 인수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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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페이퍼텍은 옛 대주그룹 핵심 계열사로 골판지 원지를 만드는 중견 제지회사다. 인쇄용지를 주력으로 삼고 있는 한솔제지가 골판지 쪽으로 사업 영역을 넓힌 셈이다. 한솔제지는 "한솔PNS가 포장용 상자를 만들고 있는데 고객사에서 골판지 상자까지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많아 대한페이퍼텍을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골판지업계는 대한페이퍼텍의 골판지 생산량이 연간 20만t 남짓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솔제지의 신규 진출로 당장의 시장 판도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국내 1위 인쇄용지 업체가 골판지 시장에 발을 뻗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골판지 업체 사이에선 위기감이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솔제지의 신규 진출과 동시에 골판지 업계 내부에서도 지각 변동의 신호가 나타났다. 골판지 원지 생산량으로는 국내 3위인 아세아그룹이 지난달 계열사 아세아페이퍼텍을 통해 골판지의 일부분인 골심지 제조업체 경산제지를 200억원에 인수한 것.

아세아페이퍼텍은 경산제지 인수를 통해 골판지 생산의 수직계열화를 이루게 됐다. 지금까지 아세아페이퍼텍은 라이너(골판지의 바깥부분에 붙이는 판지)만 만들고 골심지(골판지 내부의 꼬불꼬불한 종이)는 대양그룹에서 공급받아 왔는데,앞으로는 이를 일괄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업계는 아세아그룹의 경산제지 인수를 계기로 그동안 5곳의 메이저 골판지 제조업체들이 세력 균형을 이뤘던 골판지 원지 시장의 판도 변화를 예상하고 있다. 이와 관련,현재 골판지 원지 시장은 생산량 기준으로 태림포장 계열(동일제지 등),대양그룹(신대양제지 대양제지),아세아그룹(아세아제지 아세아페이퍼텍),삼보판지 계열(대림제지 고려제지),한국수출포장 등 '빅5'가 주도하고 있다.

골판지업체 B사 관계자는 "당장 골심지 판매 루트를 잃은 대양그룹이 새로운 거래처를 뚫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며 "장기적으로 원지 제조사 간에 골판지를 이용한 포장상자 제조업체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